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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서 열린 적벽가 세 번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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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서 열린 적벽가 세 번째 마당

입력
2005.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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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은 혼신을 다해 소리를 하고, 고수는 북 가락으로 절묘하게 장단을 치고, 청중은 추임새로 화답한다. 하는 사람, 보는 사람이 따로 놀지 않고 한데 어울려 뜨겁게 달구는 판. 판소리는 그래야 제맛이다.

요즘은 보기 드문 이런 정경이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안국동의 전통한옥에서 벌어졌다. 박홍남(85), 박홍출(74), 조영숙(71) 세 명창이 나선 이 자리는 국악음반박물관(관장 노재명) 판소리연구회가 마련한 적벽가 연속 감상의 세 번째 마당. 디귿자 형 한옥으로 지어진 한정식집을 통째로 빌어 소리판을 벌였다. 굳이 한옥을 고른 것은 옛 풍류방 분위기를 살려 제대로 즐겨보자는 뜻에서다.

무대와 객석이 나뉘어진 극장에서는 아무래도 분위기가 딱딱해서 소리꾼과 고수, 청중 간에 자연스런 교감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60여 명 청중은 마당에 신문지를 깔거나 방석을 놓고 더러 툇마루에 걸터 앉았다. 소리꾼과 고수가 아무리 훌륭해도 청중의 호응이 없으면 재미 없는 것이 소리판인데, 이 날은 소리를 제대로 들을 줄 아는 귀명창이 많아 판이 더 잘 살았다.

사설과 장단을 척척 알아듣고 ‘얼씨구’ ‘으이’ ‘좋지’ ‘잘 헌다’ 하고 제때 추임새를 넣으니 자연히 그럴 밖에. 사회도 KBS FM의 지난 4월 제 1회 귀명창대회에서 장원을 한 정혜원씨(34ㆍ논술 강사)가 맡았다.

공연은 옛 풍류방 방식을 따라 해금과 거문고의 ‘영산회상’ 중 ‘타령’으로 소릿길을 닦은 다음 세 명창의 소리를 듣고 그 끝에 산조 연주로 판을 막았다. 세 명창은 각각 서로 다른 소리제로 적벽가의 눈대목을 했다.

조영숙 명창의 장영찬제 ‘군사설움타령’, 박홍남 명창의 신갑진제 ‘공명이 동남풍 비는 데부터 조자룡 활 쏘는 데까지’, 박홍출 명창의 한승호제 ‘적벽강 불 지르는 데부터 새타령까지’가 차례로 이어졌다.

북은 따로 고수를 부르지 않고 조영숙, 박홍출 명창의 소리는 박홍남 명창이, 박홍남 명창의 소리는 박홍출 명창이 장단을 쳐서 소리꾼의 북솜씨까지 맛보는 자리가 되었다. 특히 85세 고령의 박홍남 명창이 들려준 신갑진제는 지금은 전승되지 않는 고제 판소리여서 더욱 귀했다.

마이크를 쓰지 않아 소리가 날 것 그대로 피부로 파고들었다. 바로 코 앞에서 소리를 하니 소리꾼의 땀방울이 보이고 숨소리가 들렸다. 더러 장단이 삐거나 사설을 깜빡 하면 안타까워 하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보였다. 실력없는 소리꾼이라면 두려워할 자리다.

귀명창이 많아 긴장이 되는지 명창들이 한 마디씩 했다. 박홍남 명창이 “소리가 제대로 나올랑가 모르겄네.” 그러자 북채를 잡은 박홍출 명창이 “나도 입이 바짝바짝 말르요.” 했다.

조영숙 명창은 들뜬 기분에 대뜸 소리부터 나왔다. 아차 싶어서 멈추고 하는 말, “아이구, 아니다. 단가(판소리를 하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부터 혀야지. 어찌 급하던지.” 그 말에 왁자하게 웃음이 터지며 판이 확 풀렸다.

“요즘은 이런 소리판이 없어요. 잔치잖어? 좋지.” 박홍남 명창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분 좋기는 청중도 마찬가지. 기왕이면 한복이나 외국 전통의상을 입고 와달라는 주최측 요청에 따라 티베트 고산족의 옷을 입고 온 주혜민씨는 “소름이 쫙쫙 돋는다.”며 좋아라 했다. 공연이 끝난 뒤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밥상에는 한의사가 싸온 닭강정, 주부가 가져온 한과도 올랐다. 같은 자리에서 이어진 뒷풀이에는 연꽃차까지 등장했다. 차 전문가 김현숙씨가 내놓은 것이다.

찻물을 따른 넓적한 큰 사발에 말린 연꽃을 띄워 우러나길 기다리는 동안 박홍남 명창이 단가 ‘호서가’를 했고, 그의 제자인 젊은 소리꾼 신성수씨가 창작 판소리 ‘열사가’를 했다. 오후 4시에 시작한 소리판은 그렇게 잘 놀고, 밤 8시가 넘어 끝났다. 아쉬운 마음으로 모두 함께 사진도 박고 헤어졌다.

국악음반박물관의 적벽가 연속 감상은 올해 네 차례가 더 남아있다. 9월 24일 김여막 명창의 전라도 함평 집에서, 12월 18일 경기 양평의 국악음반박물관에서, 10월 15일과 11월 5일 서울 정릉 한승호 명창의 집에서다. 문의 (02)417-7775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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