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5일 “야당이 연정 정도로는 골치 아프니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집권 후반기로 접어드는 그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귀가 아프도록 “말을 신중하게 하라”는 충고를 했는데, 그는 한 발 더 나간 폭탄선언으로 충고에 답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검사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한 검사의 발언이 무례하다고 느껴지자 “이쯤 되면 막하자는 거죠?”라고 맞받았었다. 이제 대통령은 국민과 막하자는 걸까. 29%라는 낮은 지지율 앞에 겸손해지기는커녕 “지지율이 이렇게 낮은데 어떻게 일하란 말이냐”고 몽니라도 부리려는 걸까.
돌이켜 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대통령과 국민은 ‘안해야 할 말’을 서로에게 너무 많이 했다. 최소한의 예의나 품위마저 내던진 채 그야말로 ‘막말’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말로 ‘막말 행진’을 시작했다. 그 말에 대한 비난이 잦아들기도 전에 대통령 측근의 비리로 여론이 악화하자 그는 “재신임을 받겠다”고 나섰다. 재신임을 묻는 방법으로 국민투표를 고려할 수 있다는 말에 혼란이 이어졌다. 취임 8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 7월 말에는 “한나라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협조해 주면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대연정 제안으로 국민을 놀라게 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이 준 권력을 누구 마음대로 이양하느냐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도 있다”며 한 술 더 떴다.
대단한 소신인지, 대단한 고집인지, 남의 의견에 전혀 개의치 않는 성격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말이 이러하니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아슬아슬 도를 넘어가기 일쑤다. 인터넷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넘치고, 신문에 실리는 논객들의 글에서도 ‘막말’수준이 자주 눈에 띈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가 이런 식으로 깨끗이 청산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다. 국민의 피와 눈물로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자유로운 유권자의 뜻에 따라 선출한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가 왜 이래야 할까. 노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을 슬퍼할 게 아니라 국민과의 관계가 ‘막가는’ 사이로 추락한 현실을 슬퍼해야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통치 스타일 때문이다. 대통령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헌적인 폭탄발언을 일삼고, 위헌 시비가 나오면 경청하는 대신 한발 더 나가고, 비판적인 여론은 ‘골통보수의 반대’로 몰아붙이니 많은 국민이 등돌릴 수밖에 없다.
29% 지지가 과연 국정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수치인가. 또 낮은 지지가 전적으로 지역구도 때문인가. 지난 총선에서 국민이 여대야소를 만들어 주었는데 왜 ‘약체 정부’로 머물렀나…. 노 대통령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내가 지금 대통령으로서 정도를 가고 있는가”란 것이다. 대통령이 지지가 떨어졌다고 해서 “대통령 직을 불쑥 내놓는 것이 맞는지 고심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지지율이 떨어진 대통령은 뼈를 깎는 반성과 노력으로 죽도록 일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국민을 실망시킨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죄인의 심정으로 변명도 궤변도 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연정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를 앞당기는 것이다. 권력을 누구에게 줄지는 국민만이 결정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과연 이 정도의 시련을 이기지 못해 대통령직을 내놓을 만큼 무책임하고 나약한 인물인가. 그런 사람이라고 체념하고 싶지는 않다. 대통령과 국민이 서로를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대통령은 국민을 존경하고 자신의 직책을 두려워하는 겸손함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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