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8년 자비유학으로 한국에 온지 7년 만에 성균관대 한문학과에서 한국문학 박사가 되어 내 나라로 교수가 되어 돌아간다. 나의 특이한 학력은 80년대 북한의 김형직사범대학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했다는 거다. 말하자면 남북한의 대학이 나를 학자로 키워준 것이다.
나처럼 북한에서 학사를, 남한에서 석ㆍ박사과정을 마친 사람도 흔치 않다. 학문적 눈을 틔워준 북한과 심오한 학문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준 남한을 생각하면, 비록 외국인이지만 분단된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그러나 나는 확신하건대, 분단 반세기가 넘었어도 민족적 동질성은 인민이나 국민들의 가슴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은 문화적인 정서가 같다.
춤과 노래에 능하고 술을 즐기며 인정이 넘친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친아들처럼 대해준 하숙집 할머니를 잊을 수 없다. 북한의 나이든 대학생들은 막냇동생 뻘인 나를 친구처럼 동등하게 대하며 한글(문화어)을 가르쳐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북한은 사회주의체제인지라 민족적 주체성이 아주 강하고 서로간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반면에 남한은 경제성장으로 자유가 넘치고 풍요로웠다.
한국에 살면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유별나게 강한 민족성과 단결력이었다. 월드컵 때 시청에서부터 광화문까지 가득 넘친 ‘붉은 악마’들의 붉은 물결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민족의 저력이라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반도체산업과 인터넷의 확산을 피부로 실감하면서 늘 한국인의 지혜에 감탄하곤 했다. 한국은 21세기에 중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동아시아의 주역이 될 것으로 믿는다. 나는 내달부터 고국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가르칠 것이다. 한국문학은 동아시아의 문화적 보고(寶庫)이며 고금(古今)을 통하여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결코 중국의 변방국이나 주변국이 아니다.
90년대 8년동안 한국의 지식인들을 안내하는 관광가이드를 하면서 백두산 천지를 60번이나 올라간 적이 있다. 천지에 설 때마다 북한과 남한을 동시에 생각하며 ‘통일한국‘의 무궁한 미래를 기대하곤 했다.
나는 앞으로 한중 간의 학문적, 문화적 교류를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또 남한과 북한의 처한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길이 있다면, 미력이나마 힘쓸 생각이다. 이른바 ‘기러기 아빠’인 나의 아내도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하나뿐인 딸도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쉐탕 중국 산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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