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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매의 눈으로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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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매의 눈으로 바라보라

입력
2005.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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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맹금류 눈은 포유류에 비해 월등히 큰 안구와 강력한 조절근으로 망원경과 돋보기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때문에 시야가 넓고 먼 곳뿐만 아니라 가까운 곳도 치밀하게 살필 수 있다. 독수리나 매는 1,500m 이상의 상공에서 반경 2km 안에 있는 토끼나 들쥐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추적할 수 있다.

솔개는 하늘에 떠있는 매를 주의하면서 2m 앞 나뭇잎에 붙은 작은 벌레 알을 찾아낸다. 360도의 시야를 갖고 있는 멧도요는 긴 부리로 갯벌의 지렁이를 찾으면서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새들의 시력은 인간의 4~8배인 5.0~6.0에 달한다고 한다.

■盧대통령의 동떨어진 현실인식

사막이나 초원에 사는 사람들의 시력도 뛰어나다. 이들의 시력이 좋은 것은 생존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종족과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아득한 지평선 너머의 움직임을 관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력이 좋아야 한다. 적과 동지, 늑대와 양을 구별하기 위한 시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의 무기인 셈이다.

실제로 몽골의 초원을 방문했던 지인의 경험담은 실감이 났다. 초원을 찾을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지평선 끝에서 한 가닥 먼지가 일어나며 작은 점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일행들은 누군가 말을 타고 오는 것으로 짐작했으나 몽골인은 두 사람이 탄 오토바이라고 말했다.

수십 분 후 나타난 것은 몽골 젊은이 두 명이 탄 낡은 오토바이였다고 한다. 보통사람의 눈엔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몽골인은 정확히 구별해낸 것이다. 초원에 사는 몽골인이나 사하라사막에 사는 북아프리카인의 시력도 6.0에 가깝다고 한다.

25일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권이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었다. 대통령은 지방 신문사 편집국장 간담회에서 “감히 대과 없이 일해왔다고 자부하고 싶다”고 했다.

“경제가 활짝 펴지지 않아서 국민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경제위기 극복, 경제체질 개선, 정치 개혁, 균형 발전 등을 집권 전반기의 주요 성과로 꼽았다.

대통령의 말을 듣고 올 2.4분기 국민들의 생활경제고통지수가 2001년 2.4분기(12.9) 이후 최고 수준인 11.0%를 기록했다는 재정경제부의 자료를 접한 국민들은 실소할 뿐이다. 그제 TV에 출연한 대통령은 특유의 극단적 화법으로 국민들을 충격과 혼란에 몰아넣었다.

아무리 인내심 많은 국민이라도 대통령이 정말 나라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방향을 옳게 잡고나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타협의 정치를 지향한다는 참여정권에서 진보와 보수, 중앙과 지방, 여와 야, 현 정권과 전 정권, 검찰과 경찰,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와 사, 부유층과 서민층 등 나라 전체가 편을 가르고 적대감에 휩싸여 대결을 벌이는 양상이 더 심해진 까닭이 정말 궁금하다.

나라 밖의 상황은 더 예사롭지 않다. 사상초유의 고유가 행진, 불꽃 튀는 자원 쟁탈전쟁, 중국과 인도의 대추격 등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몇몇 대기업의 일부 제품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언제 경쟁국에 추월 당해 맥없이 스러질지 모르는 살벌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불패의 신화를 이어온 미국의 자동차 메이저들이 감원 공장폐쇄 등의 비상조치를 취할 지경이 될지 누가 짐작했겠는가.

■지평선 저 끝의 움직임 아는가

선진국들은 국가 차원은 물론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수십 년 후를 내다보며 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머지 않은 미래에 나타날 상황이 예측되는데, 중국과 인도가 달려오는 말발굽소리가 요란한데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은 한결같이 권력에 눈을 떼지 못하고 서로 헐뜯으며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눈 앞의 상황도 제대로 보지 못하니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다.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사람들, 그리고 집권당과 정부 각료들은 지평선 끝에서 일어나는 먼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 한다. 눈앞의 썩은 고기에 눈을 팔지 말고 초원의 끝을 바라보라. 매의 눈으로 바라보라.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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