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멸종, 사라진 것들 - '포식자' 인간을 향한 사라진 것들의 경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멸종, 사라진 것들 - '포식자' 인간을 향한 사라진 것들의 경고

입력
2005.08.27 00:00
0 0

세계 유명 감독 7명이 ‘10분’을 소재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 ‘텐 미니츠 트럼펫’(2002)의 한 에피소드 ‘일 만년 동안’(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브라질의 원시부족 우르유족의 최후를 담고 있다.

아마존 강 유역 원시림 속에서 일 만년 가까이 석기시대 수준의 삶을 살아오던 이들은 1981년 어느 날 10분간 오지 탐사대와 맞닥뜨리고서 현대 문명에 편입한다. 그러나 10분의 짧은 시간은 축복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닌 우르유족을 멸종의 길로 인도한 저주였다.

부족민 대부분은 면역력이 떨어져 문명이 가져 다 준 질병에 쓰러져 갔고, 살아 남은 사람들도 도시로 떠나 ‘시민’이 되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현대인이 다 된 부족장이 옛 시절을 떠올리며 쓸쓸하게 미소 짓는 모습은 문명이라는 이름의 광기와 파괴를 말없이 대변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소멸을 향해 달려간다. 유기체 뿐만 아니라 유기체들이 구성하는 종(種)과 민족도 마찬가지이며, 언어를 비롯한 문화도 생성과 번영의 과정을 거쳐 생명을 다하면 지상에서 사라진다. 모든 것들이 주어진 운명인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인류는 그 죽음을 비정상적으로 앞당겨왔다.

오스트리아의 프리랜서 언론인이자, 빈 대학 등에서 생물철학과 과학철학을 강의하는 프란츠 부케티츠의 ‘멸종, 사라진 것들’은 오랜 기간 번성을 구가하다가 인간에 의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것들을 이야기한다.

멀리는 매머드부터 가깝게는 제왕딱따구리까지, 인류의 손에 의해 사라진 동물들의 비참한 최후를 언급하며, 현대 문명에 밀려 사멸의 위기에 처한 소수민족과 언어의 현주소도 되짚는다. 그러나 이 책은 멸종한 것들에 바치는 ‘조사’(弔詞)는 아니다. 인간 문명이 그 동안 지구의 모든 살아있는 것에 저지른 패악에 대한 고발장이자 인류에게 다가올 어두운 미래에 대한 경고장이라 할 수 있다.

지구는 엄청난 멸종을 초래한 다섯 차례의 커다란 자연 재앙을 거치며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했다. 거대한 몸집으로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도, 다양한 화석으로 남아 지층 연대기 측정의 기준 역할을 하는 암모나이트도 지난 재앙이 만들어낸 희생물이다. 그러나 지구는 현생 인류가 등장한 이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보다 파괴적인 여섯번째 재앙에 직면해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이 따라올 수 없는 사고력과 이를 바탕으로 발전 시킨 기술을 무기 삼아 자연을 마구 휘젓고 다니고 있다. 인간이 지구상에 퍼져가는 속도에 비례해 다른 종들은 사라져가고 있다. 인류는 조직적인 사냥을 통해 다양한 종들을 절멸시켰고, 특정 생태계에 외래종을 끌어들여 파멸을 초래했다.

인류는 자연뿐만 아니라 인류 자신에게도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백인들에 의해 학살된 인디언과 인디오 등 여러 민족들이 이름만 남긴 채 사라져 갔다. 언어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다양한 종과 문화의 소멸을 예사롭지 않게 보는 저자의 시각에는 “단일 재배는 조만간 부득이 멸종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가설이 깔려 있다. 모든 진화는 다양성을 자양분 삼아 이루어지는데, 세계적으로 획일화한 산업화와 시장경제 문명만으로 인류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연과 여러 문화를 보존하는 것은 윤리의 문제를 넘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성과 소멸의 관점에서 종과 문화의 멸종을 동일하게 바라보고 서술한 점이 흥미롭다. 인류 역사를 다른 종과 다른 민족을 파괴하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인식도 신선하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은 세계화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고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