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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 영화감독이 잡은 '찰나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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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 영화감독이 잡은 '찰나의 영상'

입력
2005.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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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있고 눈 덮인 벌판이 있으며 겨우내 죽음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나무가 있다. 메마른 나무 가지 사이로 휑하니 가고 오는 바람과 수묵의 번짐인 듯 대지와 맞닿아 있는 먹장구름. 그리고 먼산까지 구비구비 난 길과 길.

‘영상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카메라에 담은 흑백 사진은 또 하나의 선종화(禪宗畵)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여백에 먹으로 한 획, 두 획 그려놓은 듯한 길과 나무와 산은 잡힐 듯, 잡히지 않은 생의 오묘함에 대한 찰나적 포착이기도 하다.

시간과 단순성만이 영속적인 주인일 수 있는 그 풍광 앞에서 영화감독이자 사진 작가인 그는 시를 읊조린다. ‘성전에 들러 만 가지 상념에 흔들리다 밖으로 나서니 그새 눈 천지’라고. 그리고 가도가도 끝없는 길을 보며 독백한다. ‘혼자 와서 혼자 마시고 혼자 웃고 혼자 울고 혼자 떠나.’

그에게 길은 ‘어느새 인생 하나 지나와 나를 생각하며 우는’ 공간이다. ‘늘 누군가와 약속을 한 듯 하여라, 오지 않을 사람과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사람과’란 탄식을 내뱉는 회한의 고갯길이다. 그리해 그 길은 하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며 생과 사가 번갈아 드는 ‘길 위의 길’이다. ‘나 여기 왔네 바람에 실려 여름의 첫 날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가을의 마지막 날.’

길어야 50자를 넘기지 않는 시어가 곁들여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이 사진집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자연 그의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친구에게 공책을 전해 주기 위해 옆 마을까지 뜀박질을 하던 소년의 길(‘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과 죽음을 꿈꾸는 남자가 박제 만드는 노인이 동행하던 그 황톳길.(‘체리향기’)

책의 출간에 맞춰 26일부터 서울 금호 미술관에서는 1970년부터 2005년까지 그가 찍은 116점의 작품을 소개하는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9월15일까지.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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