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이용훈 공직자윤리위원장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용훈 변호사는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노 대통령측 변호인단의 일원이었다. 다음달 국회 임명동의 때는 이 대목을 야당이 많이 물고 늘어질 것 같다.
얼마 전 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생이자 탄핵심판 노 대통령 변호인, 신행정수도특별법 헌법소원 정부측 대리인이었던 조대현 변호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했을 때처럼 ‘코드 인사’나 ‘보은 인사’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새 대법원장은 노 대통령 임기 내에만 대법관 9명을 임명제청하고 헌법재판관 1명을 추천하게 된다. 더구나 한참 진행 중인 사법개혁도 새 대법원장이 주도하게 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새 대법원장 인선을 놓고 그 어느 때보다 의견발표가 활발했다.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유지하는지 마는지 피를 말리며 대법원 확정판결만 기다리게 된지는 이미 오래이다. 국가의 중대한 행정행위를 둘러싼 분쟁도 법원에서 판가름 난다.
대통령을 그만 두느냐 마느냐가 헌법재판소에서 결판나는 일까지 겪었다.그 덕에 대법원이니 헌법재판소가 어렵기만 해서 잘 모르던 사람들도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라는 지식을 얻게 됐다.
민주주의의 요체가 법치주의라는 면에서 이처럼 재판소들이 큰 일을 하게 된 것은 우리 민주주의 발전과정을 보여준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나라를 잡아보겠다고 나선 주요 후보 3명(노무현, 이회창, 이인제)이 모두 판사 출신이었다. 법원이 정치권력과 대등한 지위를 누리게 된 시기와 법원 출신들이 정치권력을 쥐어보려 떨쳐 나선 시기가 묘하게 일치한다.
미국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코드가 맞는 보수법관 존 로버츠를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한 것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의회 인준을 앞둔 로버츠에 대한 찬성, 반대 운동이 거의 대통령 선거전 규모로 커졌다.
진보 전통의 연방대법원을 보수 기류로 뒤집었던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이 병 때문에 사임할 가능성까지 있어 후임 연방대법원장 지명 구도까지 염두에 둔 정치권과 시민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쟁명이다.
미국의 학자들은 연방대법원의 역사를 렌퀴스트 원장 이전은 진보, 이후는 보수로 시대구분한다. 부시는 처음 대통령이 될 때 재검표 소송전까지 치렀기 때문에 “렌퀴스트 법원이 뽑은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일본도 최고재판소 장관에 1969년 이시다 가즈토(石田和外)가 취임하기 전의 인권중시 리버럴 기조와 이후의 공공복지 중시 보수 기조로 최고재판소의 역사가 대별된다.
사법부 수장이 누구인가는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 누구인가 만큼 중요하다. 판사가 나라를 잡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번에 새 대법원장 인선을 전후해 법원 내부와 언론, 시민단체에서 말이 많았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 바람직하다. 이용훈 후보자 자신도 “언론이 판사의 성향이나 내렸던 판결 등을 지속적으로 검증해야 국민이 사법부에 애정을 갖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법학자 Bernard Schwartz는 ‘A History of the Supreme Court’에 이렇게 적었다. “전쟁이 너무나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장군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듯이, 연방대법원의 일도 너무나 중요해서 법조인이나 법학자들에만 맡길 수 없다.”
신윤석 사회부 부장대우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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