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여러분께 알립니다. 본 항공기는 응급환자 발생으로 긴급 회항하겠습니다.”
25일 오후 3시18분 인천공항을 떠난 미 로스엔젤레스(LA)행 대한항공 KE017편에 긴급환자가 발생한 것은 이륙 10여분 만인 3시30분께. 엄마(33)와 함께 탄 어린이 승객 L(5)양이 39도의 고열과 함께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며 의식을 잃어갔다.
승무원들은 응급 조치를 하면서 탑승객을 수소문해 대학병원 의사를 찾았다. 그러나 의사는 기내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L양의 ‘열성 경련’ 증세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기장 이정훈(49)씨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즉각 기수를 돌리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항공유가 문제가 됐다. 이륙과 달리 착륙할 때는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순간 100톤에 가까운 충격이 가해진다.
항공기의 안전한 착륙을 위해서는 그 만큼 무게를 줄여야 하고 보통의 경우 소비하는 항공유로 감량을 계산한다. 항공유 100톤은 12시간가량 소요되는 LA 노선 항공기가 태평양을 건너는 데 소요되는 동안 분량.
기장은 결국 항공유를 버리기로 했다. 비행기는 인천 앞바다 상공 ‘항공유 방출구역’으로 날아가 72톤 정도(4,000여만원 어치)의 기름을 공중에 버렸다. 비행기는 오후 4시48분 인천공항 활주로에 무사히 내렸고, 오후 5시5분께 어린 환자는 곧바로 공항 의료센터로 직행했다. 환자는 정상을 되찾았고, 비행기는 기름을 다시 넣고 오후 6시22분 미국으로 떠났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승객 363명이 한 마디 불평 없이 회항에 동의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고유가인 시기에 많은 기름을 버리게 돼 안타깝지만 위급했던 환자의 건강이 회복돼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회항으로 연결편이 끊긴 승객들을 위해 LA에서의 숙박비 등으로 1,000여만원을 더 썼다. 5,000여만원이 아깝지 않은 ‘아름다운 회항’이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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