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다시 최고가 경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세계경제에 심각한 ‘오일쇼크’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분석가들도 ‘위기수준이 아니다’라며 낙관론을 유지하고, 주식시장에선 추가 상승론이 대세다. 왜 오일쇼크는 없는 것일까.
지금까지 세 차례 세계경기 후퇴가 유가상승에서 비롯됐을 만큼 유가 영향력은 경제전반에 이른다. 하지만 세계경제는 아직 건실하고 인플레이션도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5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그 다양한 배경을 소개했다.
먼저 유가상승이 점진적으로 이뤄져 충격이 완화됐다는 추정이 있다. 유가가 두 배가 되는 기간이 1979년에는 6개월, 이번에는 18개월이 걸렸다. 다른 설명은 실질 유가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인플레를 감안하면 89년 유가는 지금보다 20달러 높은 90달러가 된다. 이는 실질유가가 현재와 비슷한 70년대의 오일쇼크를 설명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
이와 달리 세계경제가 지식경제와 원유의존도가 낮은 첨산산업으로 재편됐기 때문이란 주장도 있다. 선진국 에너지 효율은 30년 전보다 두 배 높아졌고, 에너지 의존도가 낮은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졌다. 이 논리 역시 인도 한국 등 신흥 대형 에너지 소비국의 등장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와달리 유가급등이 수요증가에 기인한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이전 오일쇼크의 경우 73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금수조치, 79년 이란혁명, 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등 공급요인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 유가는 중국, 아시아 개도국, 미국 등의 수요증가로 오르고 있다. 결국, 수요증가는 세계경제의 견실한 성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유가상승의 충격이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더 구체적으로 저금리와 중국의 등장 덕분에 고유가가 인플레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저가생산품 등에 힘입어 각국 중앙은행들이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고, 저금리 덕분에 7월 미 핵심소비자물가가 전달보다 낮은 2%상승에 그치는 등 인플레 우려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저금리가 초래한 부동산 버블은 유가상승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해, 소비자들은 고유가를 소비세 정도로 생각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유가상승 구조에 부정적 요인도 없지는 않다. 먼저 과거 오일쇼크는 일시 충격에 그쳤지만, 이번 수요증가로 인한 고유가는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 골드만 삭스는 “유가 60달러 시대가 향후 5년간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5년은 수요충당을 위한 추가 유전개발, 정유시설 확대 등에 걸리는 시간이다.
또 고유가의 손 쉬운 해결책은 금리인상인데 이는 부동산 버블을 터뜨려 경기후퇴를 야기할 수 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 잠재된 유가충격은 예상외로 커질 우려도 높다.
이코노미스트는 고유가 해결의 최선책은 여전히 원유소비에 흠뻑 젖어 있는 세계 1,2위 유류 소비국인 미국과 중국의 소비억제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미국은 세계 원유소비의 4분의 1을, 중국은 2000년 이후 원유수요 증가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