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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새 대법원장 역할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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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새 대법원장 역할 막중하다

입력
2005.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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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입법, 행정, 사법부의 삼부 중 그래도 사법부가 가장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권력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여러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우수하고 청렴한 법관들이 과중한 업무량을 마다하지 않고 늦게까지 판사실 불을 밝히는 헌신을 해왔기에 가능한 긍정적 평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법원 주변에선 ‘전관예우’니 ‘무전유죄, 유전무죄’니 하는 부정적 하소연들이 쉼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당장 고액의 소송비용이 걱정되는 서민들에게 판사석은 멀고 높게만 느껴진다.

얼마 전 앞으로 6년간 우리 사법부를 이끌 새 대법원장 후보로 이용훈 전 대법관이 지명되어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대법관에까지 오르는 오랜 법관경력과 법원행정처 차장을 거친 행정경험에 비추어 이 후보에게 큰 기대를 거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이런 이력이 과거 사법부의 답답한 관행을 답습하는 타성과 과감한 법원개혁을 주저하는 소심증으로 발현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법원개혁 의지ㆍ능력 갖춰야

새 대법원장은 무엇보다 투철한 법원 개혁의 의지와 능력을 가진 인사여야 한다. 우선,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는 사법부의 수직적 관료 집단화를 중단시키고 법원을 헌법,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하는 대등한 개별 법관들의 수평적 결합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전국의 2000여 법관들을 서열에 따라 일렬로 도열 시킬 수 있고 수직적 승진만이 강조되는 법원 관료화는 이미 그 위험수위를 넘어 개별법관의 독립을 위협하고 있다. 승진에 온통 신경이 가 있는 법관들에게서 소신과 기개에 찬 판결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사법상층부의 신경을 거스를 수 있는 소위 ‘튀는 판결’은 ‘승진 탈락’과 함께 사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탈 관료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현행 법관인사제도를 손봐야 한다.

‘승진 탈락’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50대의 숙련 법관들을 법원 밖으로 내몰아 ‘전관’으로 만들고 급기야 ‘전관예우’의 병폐를 낳게 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도는 당장 폐지해야 한다. 법원 내의 인화관계까지 평가사항으로 잡고 있는 법관근무평정제도는 평정권을 가진 상급판사들의 하급판사 통제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족쇄다. 없애야 한다.

오히려, 전국 법관들의 머리 속에서 법관간의 촘촘한 서열의식을 걷어내고 수평적이고 동료적인 관계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여러 획기적 장치들이 개발돼야 한다. 그래야 ‘평생법관’도 나올 수 있고, ‘전관예우’의 고질병도 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대법원장은 21세기를 맞아 사법부의 새 역사를 열어간다는 의미에서 과거의 일부 왜곡된 사법사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과할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196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등 과거의 사법살인에 대해 어떤 진상규명의 노력도 없고 한 마디 사과도 할 줄 모르는 사법부의 입에 국민은 신뢰를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판결통해 사회적 약자 보호를

새 대법원장은 돈 없고 힘 없는 서민이 기댈 수 있는 사회적 약자보호기관으로서의 사법부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돈에 힘까지 독점한 강자들의 이익은 이미 행정부나 입법부에 의해 보호 받을 대로 보호 받지 않았던가. 사법부에서만이라도 약자의 목소리가 강자의 목소리에 묻히지 않고 꺾이지 않으며 오히려 큰 소리로 들릴 수 있어야 공평해진다.

사법부가 판결을 통해 사회적 약자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법원은 진정 모든 국민을 위한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국회청문회는 이 후보가 이런 법원개혁을 이끌 수 있는 진정한 적임자인지가 하나 하나씩 철저하게 검증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임지봉 건국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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