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 외교문서가 26일 공개되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배상액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 점은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바람에 위안부 문제나 독도 어업권 문제 등을 명확히 해결하지 못한 것이 아직까지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다며 정부의 미흡한 협상력을 비판했다.
▦유임현(38)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사무처장"배상금액 극대화 노력은 인정"
“이제라도 정부가 외교문서를 일반에 공개한 것을 환영한다. 특히 문서내용 중 배상금액과 관련해 일본측이 제안한 5,000만불을 8억불까지 끌어올린 것에 대해서는 협상단의 노력이 인정된다.
그러나 독도 문제와 연관된 어업협정이나 문화재반환 요구, 위안부 배상문제 등을 제대로 제기하지 못한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우리 정부는 당초 40해리 수역을 요구하다가 1억4,000만불의 차관을 받고 12해리 전관수역을 주장하는 일본측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돼 있다.
어업협정은 영토 및 국민주권과 관계된 문제다. 현재까지 계속되는 독도 영유권 분쟁이 여기서부터 비롯됐다는 점에서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협정을 통해 얻어낸 유ㆍ무상 차관 8억 달러가 한국 경제발전의 토대가 된 건 사실이지만 위안부 문제 등 일제가 36년간 자행한 인권 유린 등에 대해선 실질적인 피해 보상이 되지 못했다. 한일협정 전체를 새로 체결할 수는 없지만 위안부 문제나 재일동포지위에 관한 문제 등은 지금이라도 사안별로 일본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문제다.”
▦조동걸(72) 국민대 명예교수"日에 너무 쉽게 면죄부"
1965년 한일협정은 남한 군사정권이 역사적 의무를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안위에만 골몰해 급조한 실패작이다.
일부에서는 협정으로 얻어낸 유ㆍ무상 차관 8억 달러가 한국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그 돈은 이미 장면 정권에서 일본으로부터 받기로 약속된 것이었다. 이미 받기로 한 돈을 새로운 협정에서 다시 받기로 조인하고, 간이며 쓸개며 다 빼준 것이 어떻게 제대로 된 국제 협정인가.
당시 정치자금이 급했던 박정희 정권은 돈에 눈이 어두워 일본에 너무 쉽게 면죄부를 주는 역사적 오점을 남겼다. 협정문서 그 어디에도 식민지 자체에 대한 보상금이나 약탈 문화재에 대한 반환 문제는 찾아볼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굴욕적 협정을 맺은 박 정권이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이용하기 위해‘반일’에 대한 목소리를 그 어느 정권보다 높였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외교가 한 개인을 위해 좌지우지되었으니 제대로 된 외교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이제 와서 협정을 되돌리자고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나 역사를 직시하여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다.
▦오성섭(66) 6ㆍ3동지회 사무총장'굴욕외교 아니다' 판단 못해
이번 외교문서 공개로 정부가 국민을 팔아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을 챙겼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굴욕외교로 성사된 한일협정은 근본적으로 무효다.
이번에 공개된 제5차 한일회담 예비회담 내용을 보면 정부가 개인청구권을 부정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는 일제 치하에서 신음한 국민의 고혈을 국민 동의 없이 팔아먹은 것이다. 굴욕외교로 한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인 만큼 처음부터 회담 자체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특히 이번 문서에 보면 정부가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내세워 북한의 청구권까지 행사하려 한 것으로 나와있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북한도 청구권이 있는 만큼 남ㆍ북한이 함께 일본을 상대로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
정부는 이번 문서공개로 한일협정이 ‘굴욕외교’가 아니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외교문서 공개만으로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문서에는 독도 폭파 망언의 진원지가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아니라 일본측 대표단 일원인 이세키 유지로 외무성 아세아국장으로 돼 있지만, 일본측이 발언 당사자가 김 중앙정보부장임을 입증할 기밀문서를 가지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당시 협상 책임자들이 나서 회담에 관한 모든 진실을 공개하고,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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