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25일 무기명으로만 발행ㆍ유통되는 양도성 예금증서(CD)에 대해 발행 및 유통인을 등록하는 방안도 병행 추진키로 한 것은 최근 CD가 각종 금융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CD의 가장 큰 특징인 무기명성을 없앤다는 점에서 당장 “CD와 정기예금이 다를 바가 뭐냐”라는 반론이 나온다.
금감원이 CD 발행방식을 고민하게 된 것은 최근 국민ㆍ조흥은행 850억원 CD 도난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금감원이 실사를 해보니 CD 발행시장 실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CD 발행을 알선하는 전문 브로커들이 설치는데도 은행직원은 실적을 위해 이를 묵인했다. 건설업체는 CD를 분식회계에 이용하고, 사채업자는 CD로 신분노출을 막고 불법영업을 일삼았다.
CD 관련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 원인을 분석해본 결과, ‘무기명’ 특성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은 “국내 발행된 49조원의 CD 중에서도 50% 정도는 증권예탁원에 보관돼 있어 사실상 등록발행과 다름이 없다”며 “등록제로 가면 CD 거래에서 사고 위험성이 훨씬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이 등록제를 병행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등록제 추진 과정에는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금감원이 속내는 CD 전면 등록제이지만, 우선 무기명과 등록발행 병행제를 내세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만기 30~90일 금융상품인 CD는 현재 일반 기업들의 중기 자금조달 수단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무기명이어서 사채 등의 지하자금도 흘러 들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CD를 이용한 자금조달이 더욱 손쉬운 측면이 있다.
범죄에 이용되는 CD의 부정적 역할이 기업의 중기 자금조달 수단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뛰어넘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계산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금융계에서는 CD 발행시장 위축이 갖고 올 파장을 감안할 때 업계 반발과 정부 내 반론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치권이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무기명 CD는 정치인들의 비자금 등 ‘검은 돈’ 수단으로 이용돼 온 게 현실이다. 따라서 정치권 논의 과정에서 금감원 구상이 상당부분 수정되거나 아예 실현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고주희 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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