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10월부터 1965년 6월 한일협정 체결에 이르기까지 14년 동안 진행된 한일회담의 전모를 보여주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오랫동안 갖가지 추측과 의혹이 난무했던 데 비하면 특별히 눈길을 끌 만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관심이 쏠렸던 청구권 협상의 실상을 담은 관련 문서가 앞서 공개된 바 있어 더욱 그렇다.
외교문서 정리와 번역, 분석 작업에 참여한 학계 전문가들은 오히려 입을 모아 장기간의 외교 교섭에서 한국 정부가 기대 이상으로 분발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국측이 8억달러를 요구하고 일본측이 5,000만달러를 제시하면서 시작된 청구권 협상은 오랜 줄다리기 끝에 무상 3억달러, 정부차관 2억달러, 민간상업차관 3억달러 등 총 8억달러에 최종 타결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측은 유ㆍ무상 정부차관 5억달러의 명목을 ‘경제협력자금’으로 할 것을 주장했으나 한국측은 ‘청구권 문제’에 연계해 과거사와 결부시킨 것도 확인됐다.
또한 독도 영유권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려는 일본측의 끈질긴 시도를 차단해 이 문제의 의제화를 피한다는 애초의 방침을 관철했다.
이런 과정과 결과를 두고 “굴욕 외교”라거나 “청구권 자금과 독도를 바꿔 먹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태도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만들 수 없었느냐는 주장도 당시의 상황과 국제법적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역사적 정통성을 결여한 권위주의 정부가 맡았던 외교협상’이란 전제를 은근히 깔고 제기되는 재협상론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외교문서의 공개로 한일회담 관련 자료는 거의 드러난 셈이다. 이것이 과거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해소하고, 논쟁을 학문적 해석의 장으로 옮기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과거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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