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에는, 더 정확히 말해서 한국에는 ‘나’라는 개념이 없다. 있어서도 아니 된다. 아마 독자여러분께서 이 글귀를 읽고는 대뜸 무슨 얼토당토않은 얘기냐고 의아해 하시는 분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는 ‘우리’와 대응되는 개념이다.
‘우리’라는 대명사를 유별나게 즐겨 쓰는 한국인들에게는 심지어 남편도 ‘우리 남편’이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외국인들에게 ‘우리 남편’을 단어 그대로 번역해 말을 건네고 안색을 살펴보자. 이들 중 십중팔구는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를 떠올리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할 것이다.
이쯤에서 보니 한국에는 유달리 ‘우리’문화가 발달된 것 같다. 한국의 ‘우리’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을 위해 한마디 해드린다면 한국에서 ‘내 생각에는’이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다니다간 잘해야 경솔한 사람으로 평가 받기가 십상이다.
굳이 자기 생각을 얘기해야 할 경우에, 한국인들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라는 표현으로 자기 중심적인 경솔함에 대한 비난을 지혜롭게 비껴간다.
한국인들의 ‘우리’ 문화를 잘 이해하려면 우선 이들의 식(食)문화부터 먼저 익혀야 한다. 한국의 식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어느 한 외국인이 직장의 첫 회식 자리인 갈비집에서 벌인 에피소드다.
신나게 갈비를 뜯는 와중에 앙증맞게 작은 뚝배기 된장찌개가 나왔다. 분명 자기 쪽에 가깝게 놓여졌고 보아하니 1인분 같아 보여 한술 뜨려는 순간, 알코올 기운이 완연한 옆 분이 숟가락에 밥알까지 몇 알 묻혀가며 맛나게 ‘훌훌’하신다.
밥알들이 영 신경 쓰여 자기 쪽으로 슬며시 더 당겨놓지만 그 분의 숟가락은 먼 길을 마다 않고 끈질기게 찌개를 따라다녔다. 그 외국인이 바로 필자다.
함께 나눠먹는 것, 다른 사람이 남긴 음식이라도 개의치 않고 기꺼이 먹어주는 것으로 정이 쌓여지는 한국의 식문화를 진작에 알았더라면 이런 결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우리’문화가 안 좋게 보일 때도 물론 있다. 선거철이면 특히 두드러지는데 선출된 사람들의 열성 팬 대부분이 그 사투리에 그 입맛인 동네 사람들이다. 혹여 타 지역 출신을 지지했다간 배신자로 몰리기 십상이니 간혹 가족끼리도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알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하면 떠오르는 대표음식인 비빔밥처럼 경기도 뚝배기에 경상도의 싱싱한 나물과 충청도의 심심한 밑간, 거기에 전라도의 진한 고추장을 쓱싹 비벼 뜨끈한 강원도 감자탕을 한 술 뜨며 하나가 되는 날이 진정 오기를 고대하는 우리의 마음, 나 뿐만의 생각은 아닐 텐데 말이다.
추이진단 중국인ㆍ한신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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