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일제 강점기 일본의 반(反) 인도적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천명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키로 한 것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서 풀리지 않은 두 가지 과제에 대해 정공법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안은 다르지만 ‘국가권력 남용범죄에 대해선 시효적용을 배제해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과거사 인식과도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 가능성,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 등 해결해야 할 난제도 상당하다.
▦일본 정부 법적 책임론
정부가 이번에 한일회담 문서라는 구체적 근거를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물은 것은 사실상 처음이어서 정치ㆍ외교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일본은 그 동안 위안부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된 사항인 만큼 더 이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으며 우리 정부도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적극 대응을 자제했다.
정부는 그러나 3만5,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문서검토를 통해 일본의 주장과 달리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에 일본 정부의 반인도적 범죄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한일청구권 협정은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해 한일 양국간 재정적ㆍ민사적 채권 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 청구에 대한 협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협정 체결의 전제가 됐던 일본법에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한 청구권 자체가 없어 일본 정부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협정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입장 천명이 당장 배상 요구 등 법적 대응 수순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우선은 선언적 의미가 강해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배상 요구 등 향후 외교적 대응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며 “일단은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배상 청구 등을 요구하고 있어 정부의 대응 수위가 주목된다.
▦강제 동원 피해자 지원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의 도의적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1,052억원)는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자금이 포함된 것이었지만, 실제 피해자 구제에 사용된 금액은 피해 사망자 1인당 30만원, 총 95억원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경제 개발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무상 3억 달러 중 상당금액을 피해자 구제에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었으나 부상자는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보상이 불충분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안에 특별법을 마련해 이들에 대한 추가 지원의 길을 열겠다는 방침이지만, 지원 대상 과 규모 책정, 재원조달 방법 등 현실적 난제가 적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여론 수렴 등을 거쳐 종합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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