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크라이슬러 부활과 함께 본격화한 미국 자동차 메이저들의 10여년에 걸친 ‘실지(失地)회복’ 노력이 한.일 자동차 공세에 밀려 또다시 ‘백일몽’으로 전락하고 있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24일 미국 양대 자동차 메이저인 GM과 포드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a2와 Ba1으로 각각 낮춘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에 이은 이번 조치는 이들 회사의 최근 비상경영을 무색케 하는 사실상의 ‘말기암 선고’에 가까운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무디스는 이번 조치에서 향후 실적 전망도 ‘부정적’이라고 밝혀 비관론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미국 자동차 메이저들의 위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일본 자동차 메이커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30%에 육박하는 등 급성장하자 포드는 3년 연속적자의 경영위기를 맞았고, 크라이슬러는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
하지만 90년대 초 클린턴 행정부의 강력한 대일 무역공세와 엔고 여파로 3대 메이저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93년 73.8%까지 상승했다. 3대 메이저 중 가장 약체인 크라이슬러의 순이익이 일본 자동차 회사의 순이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다시 일본 토요타 한 개사의 순이익이 미국의 3대 자동차 메이저들의 순이익을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역전됐다.
이는 미국 자동차 메이저들이 시장 석권의 지름길이라며 추진했던 인수합병(M&A)을 통한 거대화 전략이 내실 없는 덩치 불리기에 불과했음을 증명한다. GM은 스웨덴의 사브, 홀덴(호주) 오펠(독일) 피아트(이탈리아) 대우(한국) 등을 합병했고, 포드는 볼보, 랜드로버, 마쓰다를 인수했다. 그러나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저가 자국 시장에서 거둔 점유율은 98년 71%에서 올해 상반기 58.7%로 떨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토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3사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23.9%에서 31%로 상승했다. 또 현대-기아차의 점유율도 같은 기간 1.1%에서 4.2%로 4배 가까이 급증하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회사들도 약진하고 있다.
한편 판매 악화로 현금유동성 위기에 빠진 미국 자동차 메이저들은 최근 할인판매와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회생을 시도해왔다. 포드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는 북미 사업부의 사무직 인력 8%를 줄이기로 한데 이어, 볼보 공장 등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을 발표할 예정이다. GM도 직원의 의료보험 혜택(근로자 일인 연간 평균 1,500달러)을 줄이는 등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연비가 나쁘고, 디자인이 투박하다는 등 소비자의 혹평을 듣고 있는 미국 자동차 메이저들이 경비절감만으로 회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GM의 지난해 자동차 대당 평균가격은 2만1,420달러로 토요타의 2만3,000달러에 비해 낮은 가격을 받고 있다. 달러 약세의 혜택도 누리지 못할 만큼 경쟁력이 약화한 것이다.
미국 자동차 메이저들은 과거처럼 정부에게 한국과 일본에 대한 강력한 통상압력을 요구할 것도 예상된다. 하지만 재기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사정이 호전되지 못할 경우 지난 7월 사퇴를 발표한 위르겐 슈렘프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에 이어 GM과 포드의 경영진들도 사퇴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홍석우 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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