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정원장 A씨는 24일 “전ㆍ현직 국정원장 면담 때 김승규 원장이 ‘감청 요원들을 상대로 도청 사실을 파악했다’고 말했다”면서 “그러나 김 원장은 물론 실무자들도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온 A씨는 이날 한국일보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 원장과의 면담 내용과 DJ정부 도청 여부, 국정원의 향후 진로 등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A씨는 “휴대폰과 휴대폰의 통화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신건 전 원장이 ‘근거가 뭐냐’고 공박한 반면 국정원측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말해 양측간 이견이 컸음을 시사했다. 그는 “내가 ‘참치 잡을 때 다른 생선도 잡히듯 합법감청 중에 다른 정보가 들어온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국정원 관계자는 시인도 부인도 않은 채 ‘통비법상 그런 자료도 폐기해야 한다’고만 했다”고 전했다.
A씨는 “DJ는 취임 직후 국정원의 정치 사찰에 치를 떨며 절대 그냥 두지 말라고 했다”면서 “국정원 요원 517명을 내보낸 살벌한 상황에서 불법적인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자신의 재임 중 도청 의혹을 부인했다.
A씨는 이어 “도청이 있었다면 어두운 부분은 도려내야 한다”면서도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인 감청을 중단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보기관이 약화하면 그 피해는 국민이 입게 된다”면서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면 되지 기능을 죽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A씨는 DJ정부 초기 오사마 빈 라덴과 국내 보석상과의 통화를 감청한 사실을 거론하며 “단순한 상거래로 판명됐지만 만약 테러 모의였는데 감청이 불가능했다면 어찌 되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 북측 인사로부터 비밀정보를 빼냈다가 독일 정부로부터 기피인물로 분류됐던 한 요원을 보호한 사례를 들며 “국익을 위해 일한 요원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이를 본 다른 요원들이 더 어려운 일을 하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금 국정원 직원들은 복지부동하는 게 사는 길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래선 안 된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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