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와 정부, 정확히는 양대 노총과 노동부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고 대립으로 치닫는 파행적인 노정관계가 장기화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노정관계가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친노(親勞) 정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화물연대, 철도노조 및 대기업노조 파업, 정부의 책임자들의 대기업노조에 대한 비판, 지하철노조 파업에 대한 직권중재 회부, 정부의 비정규직 입법안 일방적 발표, 특정 기업의 노조 또는 노조간부의 비리 및 비정규직 입법안에 대한 노사정 협상과정에서 노동부의 경직된 태도 등 여러 악재가 작용하여 노정관계가 악화되고 급기야 노동부장관 퇴진요구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노동계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강조한 참여정부가 노동정책 과정에서 노동계를 배제하고, 특히 취약노동자로서 비정규직의 보호와 남용방지에 앞장서야 할 노동부가 오히려 비정규직 확산과 문제심화에 앞장서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한편, 노동정책 책임자는 노동계를 개혁의 대상이라고 질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근로빈곤층만 피해
이런 상황에서 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제14차 국제노동기구(ILO) 아태지역총회에 양대 노총이 불참하기로 선언함에 따라 총회 개최가 무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ILO 사무총장은 우리 정부와 노동계에 유감과 항의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신이 실추되고 노동계 또한 국내외적으로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렇게 노정관계를 파행시킨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기서 따지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노정관계가 장기간 파행되고 있는 동안 누가 피해를 입게 되는 가이다. 현재 8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보호입법,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사회양극화 해소방안, 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문제 등 중요한 노동정책이 산적해 있다.
하루 빨리 노동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그 해법을 찾지 않으면 결국 그 피해는 노동자들, 특히 수많은 근로빈곤층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노동정책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노정관계는 하루 빨리 정상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부와 노동계의 태도변화가 필요하다. 정부는 노동계를 노동정책 수립에 있어서 사회적 대화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노동계는 노동정책 과정에의 참여가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러한 노동계와 노동부의 태도변화를 위해서 청와대와 여당이 적극 나서야 한다. 사실 청와대와 여당은 노정관계에 있어서 제3자가 아니라 노동부를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책임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와 노동부와의 파행적인 관계를 남의 일처럼 방치하였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라고 할 것이다. 또 이제는 우리 사회의 신망 있는 원로와 시민단체도 노정관계 정상화를 위해서 중재노력을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청와대와 여당이 나서야
한편, 노정관계를 파행시킨 원인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노동계가 ILO 아태지역 총회를 무산시키기보다는, 이번 ILO 아태지역 총회 개최를 노정관계 정상화의 계기로 삼는 지혜를 발휘할 수 없을까?
‘노동’에 관한 중요한 국제행사 개최를 노동계와 정부가 공동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 당사자가 그 동안 쌓였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고 노동정책의 공동주체로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안이 아닐까 한다. 형제간의 심각한 갈등도 중요한 가족행사 때 형제들이 만나면서 풀어지게 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가 아닌가?
김인재 상지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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