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제도를 폐지하라’(aleks), ‘투기지역을 동 단위로 변경하라’(서산대사), ‘투기성 자금을 벤처 기업 지원에 활용해 달라’(무주택서민)….
8월 말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최근 정부에 제출된 청원서 내용 중 일부다.
청원자는 서울의 한 대학 교수로 돼 있지만, 그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취합해 정리했을 뿐 의견 제시자의 대부분은 네티즌들이다. 이 청원서는 정부가 부동산 대책 수립에 국민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며 인터넷에 열어 둔 사이트 ‘부동산 정책, 희망의 백년대계’를 통해 작성된 것이다. 이 사이트는 교수들이 매주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취합해 청원서 형태로 정부에 제출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속보성이나 광범위한 정보 전달력 등 인터넷은 분명 많은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여론재판에서 보듯 익명성으로 인한 만용과 무책임함 등 간과할 수 없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부동산 청원서에 의견 제출자의 신상내용은 없고 네티즌의 ‘닉네임’만 적혀있다는 사실은 의견의 진지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여론조사의 정확성과 균형감각 역시 미덥지 않다. 정보통신부가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자 비율은 71%다. 인터넷 이용자들이 많다는 것을 강조한 이 통계는 역으로 사이트를 찾아 로그인 절차를 거쳐 글을 게재하는 일을 힘겨워 하는 이들이 30%에 육박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론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작정했다면 각계 각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폭 넓은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익명의 네티즌 여론만 챙기는 동안 정작 부동산 대책의 주 대상자인 중년층 이상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줄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경제부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