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멈춘다는 처서(處暑)가 어제였다. 해는 더 맑고 공기는 서늘했다. 일교차가 심해지고 그래서 쓸쓸해 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논벼가 익고, 조상의 묘를 벌초하며, 여름 동안 습기 찼던 옷가지와 이불, 책 등을 햇볕에 말리는 때라고 한다. 절기 그대로 날씨는 구름 없이 맑았다.
춘하추동 24 절기 중 14번 째. 여름에 기승을 부리던 모기도 이제부턴 입이 비뚤어져 맥을 못 춘다고 했다. 피부의 촉감이 다르고 기분이 달라지니 사람이 변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 그런데도 변함 없이 짜증만 나는 지대가 있다. 대통령과 여당의 끝 없는 연정(聯政) 얘기다. 고장 난 전축의 레코드 판인 양 그만 듣자고 귀를 막아도 소리가 계속 나온다. 대통령이 그렇고, 여당 의장이 그렇더니, 청와대의 지근 참모도 줄기차게 연정 타령이다. 말로 글로 꿋꿋하게 연정을 반복한다.
이젠 듣기도 거론하기도 짜증나는 일에 그럴수록 상처만 더하는 지경인데 아랑곳 없다. 대통령 필생의 소신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선 비선 조직의 문건 내용과 같다는 언쟁을 빚는다. 대통령의 소신이 일개 문건 수준으로 격하되는 논란이다.
■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연정을 연정(戀情)으로 비아냥거리지 말라고 비판을 비난했다. “한나라당이 싫다는데 왜 치근덕거리느냐”고 자문하곤 “실제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기 위해서는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친한 척을 하는 것”이라고 자답했다.
그리고는 결국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는 데 성공했다는 연애담을 예를 들어 이를 ‘연정의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무엇이 수단이고 목적인지, 무엇이 착각이고 오산인지 설명이 거듭될수록 앞뒤는 뒤범벅이 돼가고 있음을 모르는 것 같다.
■ 청와대 윤태영 부속실장은 청와대 브리핑에서 ‘옳은 길이라면 주저 없이 간다’는 제목으로 12번 째 국정일기를 띄웠다. 연정의 당위성을 대통령의 진정성으로 옹호하려는 장문의 글이지만 전달되는 것은 기껏 한 측근의 충성심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이렇게 따지다 보니 대통령이 연속 서신 쓰느라, 또 참모가 장문의 일기 쓰느라 들인 시간이 얼마나 될까를 꼽아보게 된다. 공무인지 사견인지도 애매하게 된 마당이지만 그 중요한 시간들이 안타깝고 아깝다. 계절이 바뀐다. 머리도 한 번 바꿔 보자.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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