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든 실정이라 자동차를 매매할 예정이고 매매가 되는 즉시 50만원 추가 납부 약속합니다. 위 상황을 이행치 못할 경우 자택 매각결정을 인정합니다.”
자영업자 심모(33)씨가 지난달 국민연금관리공단 지사에서 직원에게 써준 확인서의 내용이다. 심씨는 연금액 240만원이 체납돼 화물차가 압류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자 압류를 풀고 납부예외를 신청하려다 확인서 제출을 요구 받았다.
심씨는 “생계용 영업트럭을 팔아야 할 정도로 형편이 안 좋아 납부예외를 신청하고 압류해제를 요청하는데 이렇게까지 굴욕적인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며 “공공기관이 영세민을 상대하는 사채업자처럼 느껴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영세 지역가입자에게 납부예외를 해주면서 ‘확인서’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각서를 쓰도록 해 물의를 빚고 있다. 납부예외란 소득이 감소해 연금납부가 어려워질 경우 일시적으로 납부를 면제해 주는 제도. 국민연금시행규칙에 따르면 납부예외를 신청하는 자는 신고서와 납부예외를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토록 돼 있다. 물론 각서와 같은 확인서 제출은 법적 근거가 없다.
본보가 공단지사 10여 곳에 문의한 결과 모든 지사에서 신고서 외에 별도의 확인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지역의 한 지사 직원은 “신고서는 칸이 작아 알아보기 어렵지만 확인서는 큼지막한 글씨로 작성하기 때문에 어르신들도 쓸 수 있다”며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일부 지사에서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받아 적는 확인서에 무리한 표현을 담기도 해 인권침해 소지까지 있다. 역시 확인서를 써준 자영업자 이모(37)씨는 “마치 중죄인이 된 것 같아 씁쓸했다”며 “국민연금은 세금도 아닌데 왜 이런 취급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단 측은 이 같은 확인서 제출 관행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납부예외는 가입자에게 일종의 혜택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확인서를 받는 정도는 당연하다”고 해명했다. 공단의 지휘감독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납부예외 사유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공단의 의무이지만 현실적으로 인력 부족 등의 애로 때문에 별도의 확인서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법에 명시돼 있지도 않고 내용도 직원 임의로 만들어 제각각인 확인서를 굳이 제출토록 하는 것은 공단의 편의주의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가입자가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한데도 확인서를 쓰도록 방치하는 것은 공적보험인 국민연금을 사보험으로 전락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며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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