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영화 속 사랑은 접근 불가한 것이었다. 사랑에 빠지고 깊어지려는 찰나 이별한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불치병 때문이기도 하고(‘8월의 크리스마스’) 다시 상처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봄날은 간다’). 두 편의 장편 멜로 영화를 만들고, 이제 세 번째 멜로 영화 ‘외출’의 개봉을 앞둔 허진호(42) 감독에게 “왜 이번 사랑은 예전과 다르냐”고, ‘봄날은 간다’ 식으로 한다면 “어떻게 사랑이 변했냐”고 묻는 것은 성급할 지도 모른다.
‘외출’의 남녀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그들은 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륜커플의 배우자로 만나,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 있는 남편을 또 아내를 간호해야 하는 이 최악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둘은 사랑에 빠져드니 말이다.
“이들의 사랑, 돌려 말하면 불륜의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허 감독은 말한다. “영화 속 남녀가 정말 사랑했는지, 세속적인 질문으로 돌리자면 같이 잘 정도로 정말 사랑했는지는 나도 궁금한 부분”이라고 하니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느리고 찬찬한 그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남녀가 그 상황에 똑같이 처해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가슴 속 분노를 치유할 수 있겠느냐.
“불구대천의 원수라 할 정도로 미운 사람, 그 사람에 대한 가슴 속 분노를 풀 수 있는 게 무얼까 생각해 봤습니다. 자기도 똑같이 해봐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배우자가 함께 묵었을 수도 있는 여관에서 그들 역시 함께 자고, 못 마시는 술을 마셔야 할만큼 힘든 상황을 똑같이 겪으면서 비로소 이해하고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들의 불륜은 각자의 배우자를 용서하고 이해하는 과정인 셈이다.
‘외출’은 배용준, 손예진 두 주인공에 온전하게 포커스를 맞췄다. 침대 위에서 고스톱 치는 장면 등을 제외하면 잔재미를 주는 에피소드도 없고 부수적인 인물들도 없다. 오직 둘 뿐이다.
멀찌감치 서서 인물들을 관찰하던 예전 스타일과 달리 카메라는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 두 주인공 배용준과 손예진의 감정에 온전히 집중한다.
“섬세한 느낌의 연기”를 원한 허 감독의 요구에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 완전히 발가벗다시피 해야 했다. 직설 화법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상세하게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다시!” “다시!”를 외치며 몇 번이고 반복 촬영해 자연스러운 연기를 끌어내는 그의 연출 스타일 때문이었다.
배우들은 그냥 인수(배용준)다워지고 서영(손예진)다워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촬영에 임하기 전 대본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꼼꼼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의 배용준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중시하는 허 감독 앞에 어느새 그저 인수로 서기 시작했다.
그는 수줍고 안타깝고,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남녀 관계를 잡아내는 멜로 영화 영역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은 듯 하다. 그러나 늘 다른 영역을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앞으로는 매년 장편영화를 한 편씩은 만들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외출’은 4년 만에야 나온 신작이다)
“멜로 영화를 그만 두려면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게 될까요?” 농담도 진담처럼 하는 허 감독은 차기작도 멜로일 거냐는 질문을 이렇게 받아 넘긴다. ‘외출’은 9월 8일, 일본 대만 홍콩 등 아시아 7개국에서도 9월 중에 개봉 예정이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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