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백자 ‘달항아리’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국립고궁박물관 개관을 기념해 내달 25일까지 열리는 ‘백자 달항아리’ 전시회는 강퍅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전혀 다른 세계가 있었음을, 그리고 그런 세계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칠흑의 어둠 속에 여명을 닮은 희뿌연 조명을 받은 아홉 점의 달항아리는 그대로 아홉 개의 달덩이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달항아리는 사람들이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일상에 지친 눈 속으로, 감동을 잃은 가슴 속으로 들어와 동화 같은 달로 떠오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달항아리의 조용한 우레에 숨쉬기를 잊는다.
■ 전문용어로 백자대호(白磁大壺)인 달항아리는 영락없이 달덩이를 닮았다. 조선조 18세기 전반과 중엽 관요(官窯)가 있던 경기도 광주 금사리 가마와 분원에서 주로 생산되었으나 18세기 이후에는 거의 생산되지 않았다.
높이가 40cm 이상인 달항아리는 한번에 성형할 수 없어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하는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때문에 가마 안에서 구워지는 동안 모양이 일그러져 완전한 원형을 이루기 어려운데, 바로 좌우 비대칭의 부정형 둥그스름함이 백자대호의 기품과 매력의 원천이다.
■ ‘우리 민족의 풍성하고도 너그러운 마음을 담고서 아무런 장식도 없이 순백의 티없는 자태를 보여주고, 둥그런 몸 하나 남긴 채 헤아릴 수 없는 기교와 다채로운 빛깔과 형상마저도 모두 잠재워 버린’ 달항아리에 대한 안내문은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아보면 쏙 들어온다.
‘백자 항아리들을 수십 개 늘어놓고 보면 마치 어느 시골 장터에 모인 어진 아낙네들의 흰옷 입은 군상들이 생각나리만큼 우리 민족의 성정과 그들이 즐기는 색체를 잘 반영한 것’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너무나 욕심이 없고 순정적이어서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하다’는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예찬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 전시품 중에는 국보 및 보물로 지정된 2점 외에 보물지정이 예고된 것과 영국과 일본에서 건너온 2점이 포함돼 있다. 특히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소장품은 도둑에 의해 박살이 난 뒤 현장에서 수습된 300여개 조각과 분말로 기적적으로 복원돼 해외 전시에서 격찬을 받기도 했다. 우리 선조들이 구현한 백자 달항아리의 꾸밈없음의 아름다움에 발길이 쉬 돌려지지 않는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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