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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연주회 '쉽고 짧은 첫곡'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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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연주회 '쉽고 짧은 첫곡'의 비밀

입력
2005.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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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주회에는 어떤 곡을 넣을까 하는 기획자와 연주자들의 회의를 엿들어보자. 먼저 기획사에서 묻는다. "2부 대표곡은 뭘로 하죠?" 연주자를 대표하는 지휘자가 답하길 "저번에 차이코프스키 했으니, 이번엔 베토벤으로 가지요. 연주자들 공부도 되고…." 표 판매를 생각하는 기획사 측에서 반기를 든다.

"베토벤보다는 '전람회의 그림' 같은 곡이 효과도 좋고 멋지지 않을까요?" 그럼 당황한 지휘자가 말한다. "글쎄요. 그거 하려면 사람도 많이 필요하고, 악기도 많이 빌려와야 되는데 돈 많이 들 걸요. 베토벤 하자니까요." 합의 끝났다. 비용 문제와 연주자들의 연습 스케줄이 좌우한 것이다.

첫 곡은 짧고 가벼워야 한다. 왜냐고? 2부에 베토벤 교향곡하기로 했다니까. 그거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곡은 쉽고 가벼워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늦게 오는 관객을 생각해서다.

첫 곡을 놓치기 쉬운 그들이 10분 내로 입장하려면 가능한 한 짧은 곡을 해야 한다. 시간 지켜 들어온 관객들이 뭐라 해도 간단한 곡으로 가기로 한다. 사실 그들도 불평하는 일은 없었다.

그럼 남은 시간은 뭘 하지? 당연히 독주자 세워서 협연곡으로 해야 한다. "모차르트 협주곡이나 합시다." 이렇게 되면 오케스트라 반주는 몇 번 연습할 필요 없다. 더구나 많은 인원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반만 필요하고, 나머지 반은 대기실에 들어가 쉴 수 있다! 협연자는 누구로?

유명한 사람보다는 지휘자가 데려온 학생을 쓰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큰 개런티 지불 안 해도 되고, 그들은 자신들의 프로필에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이라는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해 오히려 돈을 낼지 모른다.

이렇게 하면 아주 쉽게 1시간 반짜리 정기연주회의 프로그램이 완성된다. 너무 비약이 심한가? 하지만 연주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아주 흔히 접하는 일이다. 철저한 준비를 거친 공연이라고 믿었다가 성의없는 연주에 실망한, 당신이 얼마 전에 보고 온 바로 그 공연일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공연도 많다. 이런 공연들은 앞서 말한 방식으로 기획되지 않는다. 겉보기엔 비슷할 지도 모르지만, 그 질이 다르다. 훌륭한 기획자와 연주자들은 관객이 기대하는 높은 수준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준비한다. 동시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조건, 즉 연주자도 만족하는 프로그램도 간과하지 않는다.

연주자 또한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관객'이기 때문이다. 연주자가 싫어하는 곡을 연주했을 때 관객이 감동받는 일은 거의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관객과 연주자가 모두 감동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이전 공연들보다 언제나 앞선 공연을 만들겠다는 자세로 연주회를 기획한다면 어설프게 관객을 배려하는 척 하는 프로그램을 쉽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면 절대 늦지 마라. 연주자들은 당신을 기다려주는 대신에, 첫 곡을 아주 쉽고 짧은 것으로 연주하면서 이런 핑계를 댈지도 모른다. "시작은 부담 없이 산뜻하게…."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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