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외국인 투기자본’과 ‘지배구조 개선의 공신’ 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아온 소버린자산운용이 SK㈜에 이어 23일 LG전자와 ㈜LG 주식을 전량 처분, 사실상 국내 증시에서 떠났다. 분식회계 등 SK그룹의 허점이 노출됐던 2003년 3월 SK㈜ 주식 1,902만8,000주(지분율 14.8%)를 사들이면서 경영권 다툼을 시작한 지 2년 5개월 만이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소버린은 이날 LG전자 주식 1,006만660주(7.2%)와 ㈜LG 주식 1,207만9,200주(7.0%)를 모두 9,247억원에 팔았다. 올해 2월 투자목적을 ‘경영참여’라고 밝히면서 9,749억원을 투자한 지 6개월 만에 502억의 손해를 감수한 채 손절매한 것이다.
SK㈜와의 경영권 다툼 끝에 8,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기고 6월 SK㈜ 지분을 모두 처분한 적이 있는 소버린이 LG 주식에서 손을 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돼 왔다. 소버린은 2일 LG전자와 ㈜LG에 대한 투자목적을 ‘경영참여’에서 ‘단순투자’로 변경, 한국에서 철수할 뜻을 비쳤다.
소버린은 앞서 지배구조 개선 명목으로 SK㈜ 최태원 회장의 이사직 박탈을 추진, 지난해와 올 3월 두 차례 주주총회에서 SK측과의 표 대결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 설 등이 떠돌면서 주가는 급등했다. 그러나 경영권 개입에 실패하자 소버린은 6월 갑자기 SK㈜ 지분 보유목적을 ‘경영참여’에서 ‘단순투자’로 바꿨고, 지난달 보유주식 전량을 팔았다.
소버린이 SK㈜와 달리 LG 주식 투자에서 손해를 본 건 LG의 지배구조가 SK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LG의 경우 구본무 회장과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대주주 지분이 51.49%에 달하고 LG전자도 지주회사인 ㈜LG가 지분 36%를 확보, 경영권에 도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주주의 지분이 적어 경영권 방어에 취약한 SK㈜ 주식을 대량 사들인 뒤 의도적으로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주가를 끌어올린 소버린의 수법(경영참여→단순투자→지분처분)이 LG에는 통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한국투자증권 김세중 연구원은 “우리 주식 시장도 SK사태를 겪으면서 외국인들에 대한 경계심이 생겨 무조건 추격 매수를 하지 않게 됐다”며 “우리는 더 이상 외국인들이 손쉽게 재미를 볼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버린이 우리 기업의 투명성을 한 단계 높였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소버린의 영향으로 SK㈜의 경영 투명성 등이 나아진 건 사실”이라며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은 항상 공격 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점은 긍정적 효과”라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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