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국민의 정부 시절 대통령 승인을 얻어 대공사범과 마약사범, 산업스파이, 국제테러 용의자 등의 휴대폰을 감청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도청 정국과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국정원은 지난 19일 검찰의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이동식 휴대폰 감청장비(일명 CASㆍ카스)의 사용신청서 목록에 대해 카스의 운용은 대부분 합법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40~50명으로 추정되는 휴대폰 감청대상자에 대해 대통령 승인 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국가정보기관이 국가안보와 관련해 감청을 하려면 외국기관 또는 외국인의 경우 대통령의 서면 승인을, 내국인은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허가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대통령의 승인 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카스로 휴대폰을 감청했다면 일단 합법적인 감청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휴대폰 감청은 없다”고 줄곧 주장해온 김대중 정부나 당시 국정원장들의 인지 또는 승인 여부가 새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들은 국정원이 지난 5일 자체조사 결과 발표 때 휴대폰 도청 사실을 고백하자, “국민의 정부 시절에 불법 도청은 없었다”고 정면 반박해왔다.
물론 국정원이 카스 장비를 대통령이나 법원의 승인 사항 외에 다른 목적과 용도로 자의적으로 사용했거나, 휴대폰 감청 부분을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감청허가서나 감청영장에 기재해 승인을 받아냈을 가능성도 있다. 카스가 운용된 시기에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를 지냈던 법조계 인사들은 “감청대상 전화번호에 휴대폰 전화번호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휴대폰 감청사실은 짐작도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수사는 우선 국정원이 합법적으로 휴대폰 감청을 했다면 어떤 절차를 밟아 가능했는지 밝히는 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중에 불법 도청에 해당하는 사안이 섞여있는지 여부도 가려내야 한다.
그러나 통비법이 개정된 2002년 3월 이전의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5년이어서 현재로선 국정원이 공개한 카스 사용기간(1999년 12월~2000년 9월) 중 극히 일부인 2000년 8~9월분의 도청만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 그것도 이미 수사가 8월 말로 접어든 점을 감안하면 일부라도 사법처리하기 위해서는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할 판이다.
이종찬, 신건씨 등 DJ정부 전직 국정원장들은 조만간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불법 도청이 없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할 예정이다. 김 전 대통령이 이들의 입장표명에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도 김 전 대통령과의 관계 복원에 애를 쓰는 정국 상황도 검찰 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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