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배설물을 완전히 말리고 나면 전체 중량의 3분의 1이 몸속 소화기관에 살고있던 400~500여종 세균이 죽은 ‘사체 덩어리’라고 한다. 세균 가운데는 디프테리아균이나 결핵균처럼 유해한 균이 있는가 하면, 유산균, 대장균, 효모처럼 유익한 균도 있다.
인체에 유익한 균은 주로 식품을 가공하거나 항생물질을 제조하는데 쓰이는데, 각종 발효제품은 이런 균을 이용해 만든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음식문화가 달라 인간의 몸 속에서 역할을 하는 균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내 발효식품 업체들은 한국인의 음식문화와 생활패턴에 가장 잘 맞는 ‘한국적 균’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신균불이’(身菌不二)를 외치며, 균과 함께 씨름하고 있는 ‘균 박사’ 2명을 만났다.
◆ 한국야쿠르트 허철성 중앙연구소장
배내똥 연구로 '윌' '쿠퍼스' 등 히트작 제조
한국야쿠르트 허철성(56) 중앙연구소장의 별명은 ‘배냇똥’이다. 사람 몸속에서 자라는 유산균을 분리하려면 사람의 배설물을 연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배설물 중에서도 갓 태어난 아기의 ‘배냇똥’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상태여서 연구에 가장 적합하다.
허 소장은 신생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똥을 받아온다. 뿐만 아니라 산후조리원이나 산부인과를 찾아가 똥을 달라고 애원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배냇똥.
허 소장은 대학(서울대 동물자원학과) 시절 교수 연구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균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교수는 소의 위에서 메탄가스를 발생시키는 균을 연구했는데, 도살장을 찾아가 소의 위를 받아 오는 것이 허 소장이 맡은 임무였다.
허 소장은 “소의 위를 받아 버스에 타면 악취 때문에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며 “하지만 그 위는 유용한 균들이 가득한 자원의 보고였다”고 말했다.
대학원 졸업 후 1984년 한국야쿠르트에 입사한 허 소장은 한국인들의 위에서 잘 자라는 유산균 연구에 몰입했다. 5년 만에 한국형 비피더스 유산균 ‘HY8001’을 개발했고, 89년 출시된 ‘슈퍼100’ 제품에 처음 이 유산균을 적용했다. 이어 1995년 ‘메치니코프’를 시장에 내놓았고, 2000년에는 위에 좋은 유산균 발효유 ‘윌’을 개발했다.
윌은 국내 최초의 기능성 요구르트로 큰 인기를 끌어 출시 이후 4년 10개월동안 10억개가 팔려 총 1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리고 지난해 출시한 간을 위한 기능성 발효유 ‘쿠퍼스’ 역시 임상실험에서 효과가 입증된 뒤 하루 평균 25만개가 팔리고 있다.
허 소장은 윌에 사용한 ‘락토바실러스 애시도필러스 HY2177’ 등 한국형 유산균 22건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고, 발표한 관련 논문만도 총 63건에 달한다.
허 소장의 다음 목표는 특정 유산균의 기능을 극대화해 특정 질병에 약처럼 효과가 있는 발효유를 개발하는 것. 그는 “윌과 쿠퍼스로 기능성 발효유 시장의 가능성을 본 만큼, 꾸준한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발효유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 해찬들 식품연구소 이승진 책임연구원
"수만가지 실험끝 '맛있게 매운' 고추장 발견"
지금은 고추장의 대명사가 됐지만, ‘태양초 고추장’을 처음 개발한 곳은 해찬들 식품연구소였다. 이 연구소 이승진(41) 책임연구원은 “고추장 박사가 되려면 먼저 고추장에 들어가는 균인 효모에 대해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효모는 고추장이 발효하는 과정에서 알코올과 유기산을 형성, 소비자가 느끼는 달콤하고 구수한 맛의 정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1993년 이 연구원이 해찬들에 입사해 처음 맡은 업무는 고추장에 들어가는 우수균주를 찾는 일이었다. 해찬들은 그가 입사하기 1년 전에 태양초 고추장을 처음 출시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고추장과 맛의 차이가 별로 없었다.
이 연구원은 일본의 전통 된장을 비롯, 프랑스의 유명 와인, 그리고 전국 각 지역의 군소 업체들이 생산하던 살균되지 않은 고추장과 된장을 수거해 일일이 균주를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수균주를 찾았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우수균주 100개를 분리했다 해도 고추장에 적합한 균주는 그 중 한 두 가지에 불과해, 지금의 태양초 고추장이 탄생하기까지 그가 분리해낸 균주 만도 수만 가지가 넘는다.
2년여의 연구 끝에 이 연구원은 태양초 고추장 특유의 ‘맛있게 매운’ 맛과 향을 내는 우수균주를 찾아냈다. 이 균주는 지금까지 계속 배양기에서 자손을 번창시키며 태양초 고추장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현재 ‘단백질 분해효소 생산량이 증가된 메주의 제조방법 및 된장’ 등 3건에 대한 특허를 갖고 있고, 해찬들 식품연구소는 30종류의 효모와 곰팡이 15종, 유산균 50종 등 총 139종의 균주 선발균을 보유하고 있다.
이 연구원의 목표는 태양초 고추장이 한국 고추장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것처럼 한국 된장을 대표할 수 있는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된장을 위한 우수균주를 찾아내는 것은 물론, 균주끼리의 형질전환과 세포융합을 통해 일명 ‘울트라균주’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발효식품에 강세를 보였지만, 체계적인 연구가 뒤따르지 못해 세계적인 식품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면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장류를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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