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 들어 여야가 경쟁하듯 다짐해 온 ‘깨끗한 정치’는 아직 요원하다.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정당과 국회의원 후원회의 정치자금 수입ㆍ지출 내역에서는 여전히 정치자금의 참뜻을 알지 못하는 정치인과 기업인의 존재가 큰 덩치로 떠오른다.
국고보조금을 개인차량 수리비나 유흥비, 심지어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로 썼다. 또 정치자금을 국회의원 개인의 동창회비나 종친회비, 경조사비 등 개인 용도로 쓴 사례는 허다하다. 정치권의 공사(公私) 구분 감각이 이 정도라니 사회적 상식이 심히 걱정된다.
돈을 주는 쪽의 위법도 그 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실태를 상당부분 확인시켜 주었다. 한 대기업은 회사 자금을 간부 개인 명의로 쪼개어 정치자금으로 제공한 행위가 발각돼 14명이 무더기로 고발 당했다.
이런 사례가 조사에서 비슷한 조직적 위법이 발각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다른 대기업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의혹을 떨쳐 버릴 수 없게 하는 까닭이다. 중앙선관위가 밝혔듯 더욱 교묘하고 치밀한 방법으로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감시의 눈길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반면 조사결과는 깨끗한 정치를 바라는 국민에게 어느 정도 위안도 주었다. 국민이 제공한 국고보조금과 후원회비를 쌈짓돈처럼 써 버린 몰지각한 행동과는 대조적으로 어려운 회계 기준을 맞추고, 국고보조금과 후원회비를 제대로 쓴 많은 정치인들의 노력이 확인됐다. 많은 국민은 17대 국회 들어 정치가 많이 깨끗해졌음을 인정하고 있다.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큼 정치인들이 변화해 온 것도 사실이다.
정치권과 국민이 더욱 노력하면 정치자금 관련 비리를 근본적으로 끊을 수 있다는 희망이 겨우 보이기 시작한다. 돈이 모자라 정치활동이 어렵다는 정치권의 볼멘 소리조차 국민이 귀 기울여줄 날이 오려면, 관민이 한결 더 청렴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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