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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는 官-기업 '스폰서 문화'/ 술값 대신 결제·행사 지원…'일' 생기면 '돈줄' 역할 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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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는 官-기업 '스폰서 문화'/ 술값 대신 결제·행사 지원…'일' 생기면 '돈줄' 역할 자처

입력
2005.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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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값, 접대, 후원…. 관행이니 미풍양속이니 하는 이름으로 포장된 검은 유착의 뿌리가 한국사회에서 좀처럼 뽑히지 않고 있다. 안기부 도청 X파일, 거물브로커의 전방위 로비의혹 등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 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부패 유착의 메커니즘은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변이’를 거듭하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 내 힘의 역학관계에 따른 ‘관-관(官-官)접대’ 실태보도(8월18일자 3면)에 이어 민간부문과 정ㆍ관계의 대표적 연결고리인 ‘스폰서’행태와 폐해를 소개한다.

대기업에서 대관(對官)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얼마 전 가깝게 지내는 정부부처 과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해외연수를 떠나는 부하직원을 위해 환송회 자리를 갖는 데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A씨는 두 말 않고 저녁 술자리 비용 400만원을 대신 결제해줬다.

그는 "담당 공무원들의 '스폰서'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쪽 업무를 하다 보면 아주 자연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엔 담당부처 공무원 3명을 1박2일 일정으로 제주도로 초대해 두 차례 골프와 저녁 룸 살롱 접대, 가족을 위한 선물 등 '매뉴얼'대로 접대를 했고 그 경비로 600만원 정도가 들었다고 귀뜸 했다.

영남지역 B의원은 저녁 식사나 술 자리가 있으면 항상 모 대기업 C사장을 대동한다. 동석자들에게 '잘 아는 후배니까 잘 좀 봐줘라'고 소개해주기도 하지만, C사장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술값을 지불하는 '스폰서'다. B의원은 지역구 행사에선 지역유지나 기초의원들을 스폰서로 활용한다.

정계와 관료사회에서 '스폰서'문화는 지금도 보편적이다. 말이 좋아 스폰서이지, 정확하게 말하면 돈줄 혹은 결제대리인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촌지 뇌물 향응 등에 대한 제도적 규제와 사회적 감시가 엄격해졌지만,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몫을 금전적으로 대신 떠안는 '스폰서 관행'은 아직도 성행중이다.

스폰서에도 유형과 등급이 있다. 가장 저급한 형태는 '한 건주의'형 스폰서. 아는 사람을 통해 밥이나 술 한 번 사고 민원을 들이대는 경우로,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가장 꺼리는 스타일이다. 그만큼 위험성도 높다. 경험 많은 정치인이나 고위관료들은 결코 이런 스폰서를 쓰지 않는다.

둘째는 업무적으로 연결된 스폰서. 기업이나 금융기관 같은 유관기업 인사가 대부분이다.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과거엔 재무관련 부처는 은행 증권 투신 보험 같은 금융기관에서, 상공관련 부처는 대기업에서 스폰서를 맡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대기업들은 지금도 대관업무부서나 담당자를 두고 있는데, '스폰서'는 이들의 중요한 역할중 하나다. 모 대기업은 과천과 여의도에 아예 사무실을 차려놓고 정부부처 및 국회담당 직원들을 상주시키고 있다. 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예전엔 명절 때 떡값도 돌리고 주기적으로 술이나 골프접대를 했지만 지금은 그런 직접적인 일은 별로 없다. 대신 행사를 지원하거나 술 골프 밥값 등을 대신 결제하는 스폰서 업무는 꽤 있다"고 말했다.

셋째는 'OB스폰서'다. 정부부처의 경우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나간 선배 관료들이 후배공무원을 '챙기는 것'이 불문율이다. 관료출신으로 정부산하기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OB가 현직을 챙기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야식비를 대신 결제해주는 것에서부터 각종 스폰서역할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학연이나 지연, 즉 동창스폰서가 있다.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고, 그래서 가장 선호하는 스폰서 유형이다. 중앙부처 과장 D씨는 "공무원으로서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 출세하려면 자기 집이 돈이 많거나 처가 집이 돈이 많거나 그 둘 다 아니라면 친한 친구라도 돈이 많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부처 E과장은 "사업을 하는 친한 친구나 선후배가 반대급부 부담없이 부탁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스폰서"라고 말했다. 동창회나 동기회, 혹은 동창출신 소그룹 중에선 '국회의원이나 장관 하나 키우는' 심정으로 조직적으로 정치인이나 관료들에 대한 스폰서를 자임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점에선 386정치인들도 마찬가지. 한 정치권 인사는 "깨끗한 정치를 지향하는 386정치인들도 스폰서가 필요한 때가 많다"며 "이들 중에는 '학원 재벌' 스폰서가 많은데 학생운동경력 때문에 취직을 못하고 학원을 운영하다 큰 돈을 번 경우"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완벽한 '무(無)대가성'은 없다. 브로커형 스폰서나 기업스폰서는 말할 것도 없고 OB스폰서, 동창스폰서 같은 비교적 '선의의 후원자'라고 해도, 준 쪽은 받은 쪽으로부터 '도움'을 기대하기 마련이고 받은 쪽은 준 쪽에 '부채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국가청렴위원회 관계자는 "참여정부 출범이후 공공부문의 청렴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은밀화 지능화 고도화한 청탁 부패도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며 "자녀취업보장에서 골좇佯壙?콘도 예약 등 간접적 형태의 이익을 제공하는 사례는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정치인이든 공무원이든 스폰서를 두는 까닭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드는 정치' '돈드는 행정'이 뿌리 뽑히지 않는 한 간접뇌물, 간접향응으로서의 스폰서 관행도 사라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황양준기자

박진석기자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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