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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즐긴 세종은 '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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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즐긴 세종은 '비만'

입력
2005.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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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비만과 눈병으로 광해군은 화병으로 고생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대학원 의학과 김정선씨는 이 달 말 학위를 받는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이란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씨는 조선시대 왕의 질병 치료경향을 중종 전반 이전, 중종 후반~경종대, 영조 이후 등 3개 시기로 구분했다. 이는 임진왜란(1592~98년)이나 동의보감 완성(1610년)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일반 관점과 다른 것이다. 임진왜란이나 동의보감이 조선시대 의학에서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논문에 따르면 태조 이후 중종 전반까지는 왕의 질병치료를 담당하는 내의원이 정립되고 명과의 의학교류가 활발해졌으나 실제 왕의 질병치료는 주로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소박한 대증요법인 경우가 많았다. 세종은 젊을 때 육류가 없으면 식사를 하지 못할 정도로 육식을 즐기는 반면, 운동은 싫어해 비만 증세를 보였다.

특히 35세 이후에는 당뇨병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눈병을 심하게 앓았다. 의사들은 이를 온천욕으로 치료하려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문종은 세자 때부터 종기를 앓았지만 고약이나 거머리를 붙이고 약을 먹는 정도여서 40세도 안 돼 숨졌다. 연산군 때에는 의원들이 왕의 성기능 증진을 위해 풀벌레와 뱀을 진상했다. 중종은 심하게 열이 났을 때 해열제로 똥물을 먹었다.

중종 후반부터 경종 때까지는 어의들이 명 의학의 영향을 받아 질병의 원인을 찾는 것을 중시하게 됐으며, 임진왜란을 겪으며 침구술이 내의원 치료에 널리 쓰였다.

화병과 눈병을 오래 앓은 광해군은 먹는 약이 잘 듣지 않아 침을 많이 맞았으며, 38세에 폐위된 이후에도 내의원 진료를 계속 받다가 67세에 별세했다.

영조 이후 왕들의 질병치료에서 침술이나 강한 약물을 기피하고 일상적인 보양법(補陽法)의 건강관리를 중시했다. 영조는 장수와 건강비결을 인삼이라고 생각해 72세 때 1년에 20여근의 인삼을 먹었다. 그는 83세까지 살아 조선시대 왕 중 가장 장수했다.

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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