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로 임기 후반기에 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은 고단하고 외로운 듯 하다. 노 대통령은 여전히 정력적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표정과 말에는 고단함이 묻어나고 있다. 18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오찬에서도 그랬다. 노 대통령은 위기감이라는 말을 여러 번 언급했다. “내가 동 떨어져 있는 것 같다. 내가 심각하다고 생각, 문제를 제기하면 언론도 냉담하고 국민도 냉담한 것 같다”는 탄식처럼 느껴지는 하소연도 했다.
전력을 다해 대연정을 제안하면 야당은 물론 언론, 국민이 외면하니 그런 심경이 들 법도 하다. 동북아 균형자론도 그랬다. 우리가 자존과 능력을 갖춰 동북아의 주도권을 행사하자고 역설하는데 정치권과 언론,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반응은 “비현실적이다”는 냉소였다.
오죽하면 “진정성을 이해하고 믿어달라”고 했을까.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지지도가 20%대에 머물고 있다. 70,80%의 국민은 반대하거나 동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도자에게는 혹독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좌절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려운 일이 닥칠수록 의지를 다졌던 그의 정치역정만 봐도 좌절은 어울리지 않는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건교부장관, 경제수석, 주택공사 사장 등과 오찬을 할 때 노 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건다는 생각을 갖고 부동산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후퇴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부터라도 퇴임 후에는 공공 임대주택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의 의지가 가슴을 관통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일시적으로 지칠지 몰라도 결코 주저앉을 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나오는 얘기로는 지난 2년 반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은 정치부장단 간담회에서 “전반기에는 좋은 음식을 짓는데 집중했다면 후반기에는 잘못된 주방 설비를 손질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구조적이고 큰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지역구도 극복, 부동산 안정, 동북아 평화구조 정착 등이 집권 후반기의 테제들이다. 지역구도 극복이 정치적 대계라면, 부동산 안정은 서민생활과 경제체질 개선과 직결되는 문제다. 동북아 평화구조는 안보 문제이자 한민족의 운명에 관한 것이다. 제대로 방향을 설정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방향 설정이 옳아도 위기감이 더 심화할 수 있다. 국민 동의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대한 테제들을 혼자 밀고 나가면 혼돈과 갈등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김우식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비난만 한다면 무슨 힘이 나겠느냐”며 국민과 언론의 협조를 부탁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국민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은 대통령이 몫이고 그것이 집권 후반기의 또 다른 과제일 것이다. 노 대통령은 밤 늦은 시각에도 틈만 나면 고민의 화두를 메모한다고 한다. 그 메모에 ‘국민 동의’라는 글자가 적혀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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