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배럴당 45달러 내외였던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은 8월 들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배럴당 65달러를 넘어섰다. 우리가 수입하는 원유의 기준가격이 되는 두바이 가격도 연초 대비 60% 상승했다.
이와 같은 원유가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인상시키고, 이것이 가계소비 지출을 위축시켜 내수경기의 회복을 지연시킨다. 또한 기업의 제조원가를 상승시키기 때문에 수출경쟁력이 약화되어 수출은 줄어드는 반면 에너지수입액은 늘어나서 무역흑자 규모를 축소시킨다. 고유가는 소비심리와 투자심리 위축을 수반하여 금년도 4% 안팎의 경제성장률마저도 달성하기 힘들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현재의 고유가가 일시적인 것이 아닌 수요와 공급에서 비롯되는 구조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중동정세의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공급여력 부족과 최대 석유소비국인 미국과 중국의 계속되는 석유수요 증가세가 원유가 상승의 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주부터 나타난 추가적인 유가 상승세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테러 가능성과 이란의 핵 시설 재가동 소식 등이 수급 불안 상태의 국제원유시장을 또다시 자극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산유국의 여유 생산능력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보유하고 있는 하루 150만 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중동정세 전개 여하에 따라서는 공급중단과 그로 인한 가격폭등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석유비축사업은 산유국의 정치상황과 국제정세 불안으로 인해 석유의 공급이 중단되거나 공급 부족사태 발생에 대비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석유의 비축은 주요 경제발전국들로 구성된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도 강력히 추진하는 사업이다.
IEA는 세계 석유수급과 가격안정을 위해 OPEC에 대항하여 설립된 소비국 기구로서 위기대응을 위해 회원국들에게 석유 순수입량의 90일분 이상을 비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실제로 1991년 걸프전쟁 때 IEA는 비축유 방출을 통해 국제 원유가를 하락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도 2002년부터 이 기구에 가입해 에너지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체의 일원이 되었다.
석유 비축은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동북아 석유물류 중심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 석유 소비의 약 1/4을 차지하는 동북아지역에서 우리나라는 유리한 입지여건과 대형유조선 접안이 가능한 다수의 항만을 보유하는 등 물류여건에서 상대적인 우위에 있다.
우리나라가 석유물류의 중심지로 발전한다면 상시적인 물동량의 확보로 비상시 대응능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저장설비 임대를 통한 수익을 확보하여 보다 경제적인 석유 비축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금번 서산에 새로운 석유비축기지 준공으로 우리 정부는 1억 배럴이 넘는 비축능력을 확보했고 2008년까지 비축시설을 약 1억 5,000만 배럴로 확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석유비축사업의 효과는 평상시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서 국제석유시장이 안정된 시기에는 석유비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져서 적절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석유비축사업은 원유가 등락에 관계없이 꾸준히 추진함으로써 비상시를 대비하는 한편 우리가 동북아 물류중심으로 발전하는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방기열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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