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도 영웅이 존재하기 마련이다.그러나 각종 질곡으로 그늘진 우리의 현대사를 보노라면 우리에게는 내세울만한 인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이는 과거 및 현재 인물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판과 정치계의 이전투구로 인한 상대편 죽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지도자들 치고 어디 성한 사람이 있었는가.
정말 다행이다. 금번 광복 60주년 여론조사를 읽으면서 우리에게도 다수의 영웅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먼저 국가 전반에 걸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순위별로 조사되었다.
이들 영웅들도 모두 인간인지라 각가지 단점을 내포하고 있고, 재임활동 중에는 다양한 형태의 과오를 범했을 것이다. 이들을 부정적으로만 보면 누구 하나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하겠다.
더욱 다행인 것은 각 분야별 영웅들이 다양하게 조사되었다는 점이다. 여성계, 기업, 문화예술, 연예, 체육, 학계, 종교계 등의 인물을 망라하였다는 것은 큰 진전이다.
우리는 평소 추상적이고도 거대한 담론을 선호하여 영향력 있는 인물에 대해 논의한다면 항상 정치인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였다. 이번에는 이러한 독자 정서를 극복하여 매우 구체적인 분야의 영웅들을 조사하였다는 점에서 인물 여론조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인물 여론조사는 1회로 끝나서는 아니 되고 주기적으로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영웅은 시간의 검증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유형의 여론조사가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전문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각종 조사 결과가 축적되면 국민들의 영웅관이 점차 변화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과거에는 정치인, 장군, 종교 지도자들이 영웅으로 선정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영웅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10대 청소년들이 존경하는 10대 인물을 보면 1948년의 조사까지는 정치인, 장군, 도덕적 지도자 등이 주로 포함되었으나, 1986년의 조사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이 연예인과 체육인이었다. 이렇게 예상되는 영웅관의 급속한 변화에 대해 우리의 기성 세대들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사회에 다양한 형태의 영웅이 많을수록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영웅의 수가 많다는 것은 그 사회가 역동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전택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ㆍUC Berkeley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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