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층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팍팍한지를 보여주는 우울한 자료가 또 하나 나왔다. 생명보험사의 2004 회계연도인 작년 4월부터 올 3월까지 해약 또는 효력상실(2개월 이상 보험료 미납)된 보험계약이 988만건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도의 956만건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당시 실업과 소득감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보험사 창구마다 늘어선 계약해지 행렬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다시금 참담함을 느끼게 하는 얘기다.
금융상품 중 보험은 성격상 ‘가장 나중에 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 수많은 망설임 끝에 큰 맘 먹고 가입한 데다 예금과 달리 해약손실이 커, 생계유지가 위협 받지 않는 한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보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도 외환위기 이상의 한파를 맞은 듯이 보험 해약이 급증한 것은 빈곤층이 700만명을 넘었다는 것 만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가계의 곤궁함이 이 정도라면 민간소비가 살아나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은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상장사의 올 상반기 채산성도 작년에 비해 크게 나빠진 것으로 밝혀졌다. 매출은 그나마 2%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9%, 반기 순이익은 11% 줄었다. 특히 삼성전자 LG전자 등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절반으로 줄었고, 그 영향으로 제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1.5%에서 8.08%로 떨어졌다.
물론 정부는 “해 뜨기 직전의 어둠이 가장 깊다”고 또다시 강변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그제 언론사 정치부장 간담회에서 “(대안없는 비판을 보면) ‘쓴 사람, 당신이 와서 해보지’라는 생각이 든다“며 “논쟁을 하자고 하면 종이 한 장 없이 5~6시간 동안 한국의 전략지도를 다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허한 로드맵들을 다시 꺼내 토론을 즐기자는 것 같은데 국민들 가슴엔 그런 여유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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