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벤구리온을 생각하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벤구리온을 생각하며

입력
2005.08.19 00:00
0 0

꼬마들까지 매단 채 자기 집에서 울부짖으며 끌려나가는 부모들의 모습은 참으로 안쓰럽다. 분노와 좌절에 떠는 부모들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길게는 30여 년을 살아온 이스라엘 정착민들이다.

그러나 불쌍하다고만 보아 줄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역사가, 문제의 뿌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1만 명도 안 되는 이스라엘인들이 그 물이 귀한 곳에서 잔디에까지 스프링쿨러를 틀어대며 군인들의 철통 같은 보호를 받고 사는 동안 140만 팔레스타인인들은 게딱지 같은 난민촌에서 절대빈곤과 검문에 시달려 왔다.

여기서 잠시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878년 오스만투르크제국 기록에 따르면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 46만2,465명 가운데 유대인은 3.2%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나머지는 아랍인이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시온주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유럽의 유대인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독립 선언 1년 전인 1946년 말 영국의 위임통치령이던 팔레스타인에는 유대인이 32.4%를 점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2,000년 전에 자기들 땅이었다고 지금도 우기지만 꼭 그런 것만 같지도 않다.

“우리끼리는 진실을 무시하지 말자. 정치적으로 우리는 침략자이고 그들은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 나라는 그들의 나라다. 이 폭동은 유대인들이 조국을 강탈하려는 데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다.”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로 초대 총리를 지낸 다비드 벤구리온이 1938년 팔레스타인인들의 폭동을 제압할 대책을 논하는 내부 모임 연설에서 한 말이다.

이런 사실(史實)들을 새삼 재확인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될까?

언뜻 1988년 9월 서울에서 겪은 일이 생각난다.

당시 나는 서울올림픽을 취재하러 오는 외국 기자들 인터뷰를 맡고 있었다. 어느 날 메인 프레스 센터 한국일보 부스에 웬 노인(당시 70세)이 들어오더니 자기 소개를 하면서 전단 같은 것을 내밀었다.

호주의 작은 통신사 기자인데 1940년대 라트비아가 소련에 강점당하면서 호주로 이민을 왔고 지금까지 일을 하는 틈틈이 이런 식으로 조국의 독립을 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풍찬노숙하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생각 났다. 데스크(신문사에서 기자를 지휘하고 지면을 배정하는 부장, 국장 등을 일컫는 말)에게 “크게 쓰면 좋겠습니다”하고 들뜬 목소리로 보고했다.

데스크는 딱하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50년이 지났는데 무슨 독립이 돼? 그냥 화제지~.” 그런데 소련이 무너지면서 라트비아는 3년 뒤인 91년 8월 다시 완전한 독립국이 됐다.

그날 나는 그 데스크를 한참 비웃어주었다. “내가 독립 된다고 그랬잖아요!”. 물론 속으로….

사필귀정일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그런 사필귀정의 날이 올까?

아니, 역사에서 사필귀정을 믿는 것은 순진한 기대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인들은 땅을 차지한 대신 불안과 공포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사필귀정에 기대기보다는 그들도 불안과 공포를 떨쳐내고 정상적인 삶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800달러(2004년 기준 미 중앙정보국 자료)의 윤택함을 누려도, 핵무기(200~400기로 추정)를 아무리 많이 쌓아놓아도, 육해공에서 ‘테러리스트들’에게 미사일을 날려도 자살폭탄 공격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광일 기획취재부장 ki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