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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영이의 비닐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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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영이의 비닐 우산

입력
200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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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 말하지 않아도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얌전한 글. 그리고 그런 마음을 살뜰하게 더듬어 조용히 펼쳐 보이는 그림. 그림책 ‘영이의 비닐우산’은 그렇게 차분한 글과 그림으로 가슴에 스며든다.

비 오는 아침, 학교 앞 문방구 담벼락에 거지 할아버지가 비를 맞으며 잠들어 있다. 짖궂은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툭툭 건드리고, 문방구 아줌마는 아침부터 재수없다고 투덜댄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영이는 아침 자습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거지 할아버지에게 자기의 비닐 우산을 씌워드린다. 누가 볼까 좌우를 둘러보며 살며시. 비 갠 그날 오후 하교길, 할아버지는 없고 비닐우산만 담벼락에 세워져 있다. 영이가 중얼거린다. “할아버지가 가져가셔도 괜찮은 건데….”

글은 여기서 끝난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책의 마지막 장면, 날에 갰는데도 비닐우산을 펴고 걸어가는 영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 영이 기분이 참 흐뭇한가 보다. 수줍어서 한참 머뭇거리다가 씌워드린 우산을 담벼락에 두고 간 할아버지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그림은 빗소리가 들릴 것처럼 생생하게 비오는 날 풍경을 보여주면서 영이를 따라 간다. 망설이는 영이는 빗 속에 흐릿하거나 우두커니 선 뒷모습으로 그렸다.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거지 할아버지가 걱정돼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영이의 착한 눈길을. 거지 할아버지 옆에 놓인, 빗물이 가득 고여 촐촐 넘치는 쭈그러진 깡통만 큼직하게 그려넣은 장면이나,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만 보이는 책 중간의 세 컷도 영이의 안타까운 마음을 말 없이 전해준다.

우산을 씌워드리려고 멀리서 다가오는 영이는 두 다리와 노란 웃옷 끝자락만 보이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등을 돌린 채 후다닥 뛰어가고 있다.

영이는 어렵게 용기를 냈구나. 이런 식으로 시간과 마음의 흐름을 잡아내며 펼쳐지는 그림이 꼭 잘 만든 단편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 그림책은 그림책 기획모임 달리의 우리시그림책 여섯 번째 작품이다. 우리나라 옛노래, 현대시, 어린이시로 만드는 이 시리즈는 그동안 ‘시리동동 거미동동’ ‘내 동생’ ‘넉 점 반’ ‘낮에 나온 반달’ ‘길로 길로 가다가’ 가 나와 모두 호평을 받았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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