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과거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자행한 휴대폰 불법 도청에 국산 통신장비를 사용했다는 한나라당 등 정치권 주장의 진위를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이를 둘러싼 정치권과 업계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사실 여부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고 있다.
18일 관계당국 및 업계에 따르면 삼성ㆍLG전자 등 통신장비업체들이 감청 장비를 부착할 수 있는 이동통신 기지국용 교환기를 만들어 국내외에 판매하고(본보 17일자 5면 보도) 감청 관련 특허까지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나라당은 안기부가 휴대폰 도청에 관련 장비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대정부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휴대폰 도ㆍ감청 장비와 관련한 의혹은 16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휴대폰 도청 가능성을 인정한 기자회견에서 처음 제기됐다. 이날 배석했던 김동수 정보통신진흥국장은 “장비업체들이 감청이 가능한 이동통신용 장비를 만들어 일부 국가에 수출했다”고 밝혔다.
이통장비업체들도 이를 시인했다. 삼성전자는 “교환기 등 수출장비의 경우 해당 국가에서 요청하면 해당 국가에서 제공한 감청장비를 부착해 판매했다”고 설명했다. LG전자도 “감청장비를 부착할 수 있는 교환기를 국내외에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17일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이 특허청 제출 자료를 인용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동통신용 교환기에 적용할 수 있는 감청 기술 특허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적용한 장비가 국내외에 납품, 유통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장비업체들은 특허 취득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제품화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감청 장비를 부착할 경우 감청이 가능한 교환기 제조 기술을 개발해 2002년 1월 4일 특허를 취득했다.
LG전자도 유사한 특허를 2002년과 2004년에 각각 1건씩 총 2건을 취득했다. 특히 LG전자가 2002년 1월 16일 취득한 ‘통신망에서의 특정 번호의 호에 대한 감청 방법’이라는 제목의 특허 기술은 교환기에 감청 장비를 부착하지 않아도 교환기만으로도 감청이 가능한 기술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양사는 “모두 특허만 취득했을 뿐 이를 이용해 제품을 제조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제품을 만들지 않더라도 관련 특허를 갖고 있으면 나중에 특허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취득한 것일 뿐”이라며 제품화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감청장비를 제품화하지 않았다는 양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등에서는 국정원이 개발비용을 아끼고, 손쉽게 도청하기 위해 양사의 관련 장비를 사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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