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이 철도청장 재직시절 직원 포상금 등으로 편성된 예산을 고위층 로비 목적의 판공비로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전 차관은 이렇게 마련한 판공비로 청와대와 감사원, 노사정위원회와 국회의원 등 수십 명에게 30만~100만원씩 건넸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을 자신이 임의로 챙겨 개인로비에 사용한 것은 자질과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행위다. 그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배경에 이런 부패구조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이런 행위가 어디 김 전 차관에만 해당되는 일이겠는가. 고위공직을 지낸 인사들 말을 들어보면 현직에 있을 때 지갑을 열어 본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음식값은 물론 개인적인 경조사비까지 관용카드로 처리하는 게 관행이었다. 올 초 발표된 1급 이상 공직자 재산변동 공개 현황은 이런 관행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재산이 늘어난 공직자 상당수가 “봉급을 대부분 저축했다”고 말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판공비는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월급은 고스란히 집에 가져가니 서민들은 불황에 신음해도 공직자는 재산이 증가하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눈먼 돈’처럼 운영되는 판공비에 대한 투명한 감시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서울시 등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시민단체의 압력으로 오래 전부터 판공비를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몇 년 전 장ㆍ차관 등 3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판공비 사용내역 공개방침을 밝혔으나 흐지부지됐다.
고위공직자 판공비는 제멋대로 쓰라고 주는 돈이 아니다. 고위공직자로서의 품위 유지와 원활한 업무 수행 등 공적 활동을 위해 지급되는 국민의 세금이다. 국민들은 고위공직자 판공비 쓰임을 참여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정권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삼는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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