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코틀랜드의 고도(古都) 에든버러가 들썩이고 있다. 재즈 앤 블루스 페스티벌(7월29일~8월7일)을 시작으로 밀리터리 타투(5~27일),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페스티벌(10~14일),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13~29일), 인터내셔널 페스티벌(14일~9월4일) 등 크고 작은 축제가 동시다발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7일 개막해 29일 막을 내리는 제59회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은 가장 많은 관객을 모으며 축제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페스티벌은 프린지(Fringe.주변부)라는 이름을 넘어 연극, 마임,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공연축제다.
페스티벌을 주관하는 협회(The Festival Fringe Society)는 2003년 행사 자체 수익은 불과 5,826파운드(약 1,100만원)였지만, 경제효과는 7,500만 파운드(약 1425억원)에 달해 지역경제의 효자 노릇도 톡톡히 했다. 이번에도 무려 40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젊은 예술가들의 도전정신을 지켜보기 위해 에든버러를 찾았다.
올해는 미국 캐나다 짐바브웨 러시아 베네수엘라 한국 일본 등 52개국에서 온 1,830편이 기량을 겨루고 있다. 지난해보다 100편이 늘어났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극장 333곳 중 하나를 대관하고 300파운드(약 60만원)의 참가비를 협회에 납부하기만 하면 누구나 축제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참가작 중에서는 연극이 3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코미디(22%)와 음악 공연(21%)이 그 다음이다. 연극은 지난 해보다 166편이 늘었고, 700석 이상의 극장 무대에 오르는 대형 공연도 많아졌다.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를 패러디한 ‘리벤지 오브 더 새타이어’(Revenge of The Satire 영국)와 ‘릭 앤 츄’(Lick and Chew 미국) 등 독특한 소재와 형식의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최근의 현실을 반영하듯 ‘매니페스트 데스티니’(Manifest Destiny 영국) ‘지하드’ (Zhihad 영국) ‘마이 피라미드’ (My Pyramid 캐나다) 등 테러를 주제로 하거나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테러를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들은 일부 수정을 거쳐 관객을 만나고 있다. 특히 최근 일련의 런던 테러 때문에 삼엄한 정도는 아니어도 보안이 부쩍 강화됐다. 8일 오후에는 어셈블리 홀 남자 화장실에서 검은 봉지가 발견돼 한국의 ‘점프’ 공연이 잠시 중단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에든버러를 찾은 공연 팀과 관객들의 표정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즐겁고 활기차다. 프린지 페스티벌 사무실이 위치한 하이 스트리트는 연일 공연 팀들의 거리 공연으로 한껏 들떠 있다.
옷을 벗어 던지고 랩으로 온 몸을 감싸거나, 어린이를 끌어들이는 등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애쓰는 모습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공연작이 1,000편을 훌쩍 넘기는 만큼 어떻게든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위한 홍보전도 치열하다. ‘점프’를 제작한 ㈜예감의 김민섭씨는 “힘들여 이곳 저곳 포스터를 붙여도 다른 팀이 위에 덧붙여 10분을 채 못 버틴다. 거리가 온통 공연 팀들의 전쟁터”라고 혀를 내둘렀다.
축제기간의 반환점을 돈 18일까지는 일단 스탠딩 코미디와 아시아 작품이 강세다. 무료신문 메트로가 매일 집계하는 관객 순위를 보면 드럼 연주자들의 힘 넘치는 동작과 폭발적인 음을 결합한 ‘타오: 마셜 아트 오브 드럼스’(Tao: Martial Art of Drums 일본), 알카자 쇼(태국에서 공연되는 게이 쇼)를 떠올리게 하는 ‘레이디 보이스 오브 방콕’(Lady boys of Bangkok 태국), 스탠딩 코미디 ‘오미드 잘릴리-노 어젠다’(Omid Djalili-No Agenda 인도), 무술과 곡예를 결합한 ‘점프’(Jump 한국)가 큰 변동 없이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에든버러= 글·사진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점프' 등 서양 정서 맞춰 성공"
1999년 취임한 폴 거진(41)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위원장은 단번에 입장권 판매와 참가자 수를 급증시킨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음악을 전공하고 극장을 운영하기도 한 그를 만나 페스티벌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프린지 페스티벌 성공의 힘은 무엇인가.
“프로모터만 1,500여명이 참가한다. 공연 팀들에게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는 것이 프린지 페스티벌의 매력이다. 지난해만 해도 18편이 뉴욕의 큰 부대로 진출했다.”
-그 동안 참가한 한국 작품을 평가한다면.
“‘난타’ ‘도깨비 스톰’ ‘점프’는 서양인 정서에 맞게 손질을 해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들이다. 일본, 인도의 작품들은 그런 작업을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프린지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유명 배우는 누가 있는가.
“70년대 로빈 윌리엄스가 공연을 했고, 코미디언 미스터 빈은 80년대 이곳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2002년에는 수잔 서랜든과 팀 로빈슨 부부가 9ㆍ11을 소재로 한 ‘가이스’(Guys)로 프린지 페스티벌을 찾았다. 지난해에는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방문하기도 했다.”
-점점 상업화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프린지'의 정신은 무엇인가.
“상업적 이라기보다는 프로페셔널한 성격이 강해진 거다. 하고 싶으면 누구나 공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프린지’ 정신이다.”
-예산을 얼마인가. 그리고 비용은 어디서 충당하나.
“올해 예산은 150만(약 28억 5,000만원) 파운드다. 시(市)에서 2~3% 정도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공연 팀들의 참가비와 스폰서, 후원자들의 도움 등으로 충당한다.”
-지원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시에서 지원 확대 의사를 밝혔으나 페스티벌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거부했다. 나는 공연 팀들을 돕고 싶을 뿐이다. (독립성을 잃어) 공연 팀들이 간섭 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에든버러=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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