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8일 낮 27개 중앙 언론사 정치부장단과 2시간 30여분동안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 도청 사건, 북핵 문제, 언론 관계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소상히 밝혔다. 노 대통령은 특히 간담회 초반 40여분 동안 대연정 제안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야당에 정치협상을 제안해 연정에 대한 강한 집착을 다시금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도청 문제에 대해선 “정권의 도청과 국정원 일부 조직의 도청을 구분해서 논의해야 혼동이 없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정권 차원에서 책임 질 도청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했다. 국정원이 DJ정부 시절 도청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해 김 전 대통령측이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반발하는 것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풀이된다.
▦대연정
연정 문제를 제기한 것은 우리 사회의 지도력 위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정치 지도력이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가 현재의 선거제도로 계속 선거를 했을 때 항상 여소야대가 나올 것 아니냐. 이대로 갈 것이냐에 대해 문제를 던진 것이다. 정치구조 얘기를 하면 지역구도 문제가 안 나올 수 없다.
야당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제가 정치협상을 제의할 것이다. 우리 한국이 이대로 가면 여소야대가 상시적으로 진행되고 지역구도가 해소되지 않고 지금보다 더 좋아질 가능성은 없다. 내가 영남 사람이고 호남당과 함께 수십년 동안 지역주의와 맞서면서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지금 지역 갈등은 상당히 완화됐다고 봐야 된다.그런데 그렇지 않은 상황, 즉 지역주의와 여소야대 구조, 그리고 타협은 사쿠라로 매도되는 문화를 갖고 한국이 앞으로 제반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겠는가.
새로운 상황이라는 것은 (여야) 모두에게 위기이면서 모두에게 기회이다. 국익이란 측면에서는 연정은 무조건 좋은 것이 될 것이다. 자꾸 노림수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노림수라 할 지라도 한나라당이 마음을 딱 비우고 큰 선택을 하면 대통령 노림수가 무슨 소용이 있나.
대연정은 거국내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야당이 걸핏하면 거국내각 들고 나오면서 대연정 나오니까 “앗 뜨거워”라며 안 한다고 하니까 대화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연정을 거부한 이유가 ‘별로 득 볼 게 없다’ 는 차원인 것 같다. 지역구도나 여소야대에 문제가 없다는 좀더 수준 있는 이론을 갖춰 거부를 해주면 우리의 정치수준이 좀 높아질 것이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전략적이면서 굉장히 유동적이어서 평화적 핵 이용에 관한 것은 대답할 수 없다. 평화적 이용이라는 것은 어느 나라나 갖고 있는 당연한 권리이므로 미국이라 할 지라도 당분간 얘기이고, 시기와 조건의 문제이지 ‘영원히 갖지 말라’는 주장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한국 정부는 그런 점에서 원칙적으로 ‘평화적 핵 이용은 모든 국가의 권리’라는 입장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획득하는 데 걸리는 만큼이 시간과 조건이 되지 않겠느냐. 결국은 당장 ‘권리가 있다’, ‘앞으로 영원히 권리가 없다’ 양쪽 입장에 여러가지 시간과 조건이 많이 개입할 수 있지 않겠느냐.
▦도청 및 국정원 개혁
처음에 나는 도청이 있으냐, 없느냐만 생각했다. 국정원 또는 국정원 일부 조직의 도청과 정권의 도청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도청과 관련) 정권이 책임질만한 그런 과오는 없다. 국정원에서 책임지고 발표했는데 발표한 것을 보니까 내용이 좀 부실한 것 같다.
‘참여정부 도청 없었냐’고 물으면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수사 결과 보자’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혁의 우선순위에서 국정원 개혁의 순위를 그렇게 높이 두지 않았다. 내가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는 정치적 중립이 국정원의 최대 개혁이며, 그 다음이 조직합리화라고 생각했다. 국정원에 (국내 파트) 출입처를 없애라고 지시했는데 내가 확인을 못했다. 사람 뒷조사하는 정보는 단 한 줄도 내가 보고 받은 적이 없다. 국정원 조직 개혁에 관한 문제는 차분하게 논의하는 게 좋을 것이다.
▦언론 관계
그 동안 언론과의 관계는 힘들고 불편한 관계였다. 이제는 상식적으로 대화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다. 정권과 언론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비판과 견제가 기본이다. 그러나 파괴적ㆍ분열적 비판이 아니라, 사회의 공동목표를 향해 함께 가기 위해 비판과 견제 수단을 갖고 협력해 나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요즘처럼 권력이 절대적 우위에 있지 않고 정보가 모두 공개된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은 달라질 수도 있다. 정부와 대안 경쟁도 하고 방향에 대한 논쟁도 하고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에 참여한다고 생각해 달라. 창조적 경쟁과 협력의 관계가 설정되기를 희망한다.
문제 의식이 어느 정도 공통됐을 때 비로소 대화ㆍ토론이 가능한데 이 점에서 다소 초점이 안 맞는다는 느낌이 있다. 여러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쪽에 책임이 있다.
진짜 내가 보기에 심각한 문제, 이대로 방치하면 장차 위기로 현실화될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를 제기하면 대체로 언론은 냉담하고 국민도 냉담한 것 같다. 냉담에 그치지 않고 문제의 본질 밖에 있는 갈등만 부각돼 마치 내가 싸움을 건 것처럼 비쳐져 힘이 들 때가 많다. 대안이 아닌 기사에 대해서는 우리도 이제 일일이 대응하려고 한다.
▦국가권력 남용 범죄 시효 문제
형사 소급 시효 문제에 관해 머리 속에 구체적인 사건을 염두에 두어본 것은 이제까지 한 건도 없다. 참여정부가 보다 더 엄격한 책임 하에서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일차적인 것이다.
민사상 문제는 실제 해소돼야 할 문제가 들어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진짜 피해자는 시효가 지나 해결이 안 되고, 오히려 독재권력 집단의 불법행위를 한 사람이 자기 재산을 찾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
시효가 완성된 문제에 관해 수사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한다. 시효가 완성됐더라도 역사적으로 정리해 둬야 할 것이 있는데 지금 합법적으로 강제 수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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