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 요크셔테리어 숫놈을 3년 간 자식처럼 돌보던 김모(34ㆍ여)씨는 지난해 동네 동물병원에 성대 절제 수술을 맡겼다가 개가 죽는 사고를 당했다.
간단한 수술이었기에 의료사고라고 확신한 김씨는 농림부 대한수의사회 한국애견협회 등을 돌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뚜렷한 도움을 얻지 못했다.
김씨는 “이제 우리나라도 애완동물을 단순한 동물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여기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는데 의료사고에 대해 이처럼 무방비인 줄은 몰랐다”고 한탄했다.
애완동물 의료사고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제책이 전무하다시피 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애완동물을 기르고 있는 집이 전체의 20%인 280만 가구에 이르고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로 불릴 정도로 가족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의료사고가 나면 여전히 가축 취급을 받는다.
고양이가 아파 동물병원을 찾았던 이모(28)씨는 감기라는 의사 말만 믿고 치료를 맡겼으나 결국 하루 만에 죽고 말았다. 이씨는 여러 곳에 문의한 결과,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 힘들어 보상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낙담했다. 소송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시간과 비용, 절차 면에서 여간 힘들지 않아 수의사로부터 약간의 장례비만 받는 선에서 마음을 접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애완동물 의료사고 상담건수는 2000년 22건에서 2001년 36건, 2002년 149건, 2003년 288건, 지난해는 224건으로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소보원 중재로 해결된 것은 10%에도 못 미치는 19건에 그쳤다.
제왕절개 수술을 하다 병원에서 다른 병에 감염된 경우, 홍역인데 진단이 잘못돼 죽은 경우 등 수의사의 과실이 명백한 몇몇 경우에 한해서만 피해 중재가 가능하다는 게 소보원 측의 설명이다.
애완동물 의료사고 시 해결이 어려운 것은 관련 법규 및 기구가 미비하기 때문. 동물보호법 제9조에는 ‘동물에 대한 외과적 수술을 하는 자는 수의학적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만 있고, 수의사법에도 진료 과실을 조정할 수 있는 기관이나 처벌에 대한 언급이 없다.
소비자보호법상 소비자피해보상규정에도 수의(獸醫) 서비스에 관한 사항은 없어 애완동물 의료사고 피해자가 기댈 수 있는 보호장치는 거의 없다.
다만 소보원의 중재를 거쳐 일반 물품의 보수ㆍ관리 과실 사고처럼 민법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의 경우는 의료법에 의해 ‘의료 심사조정 위원회’라는 별도 기구가 설치돼 있다.
한국동물보호협회 자문위원인 임규호 수의사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평소 수의사의 자질을 감독하고, 의료사고 발생 시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전문기구 설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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