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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21) 파도를 해치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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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21) 파도를 해치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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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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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이후의 러시아

깊고 어둡고 추운 겨울의 나라. 살을 에듯 추운 페테르부르크의 겨울 밤, 빼앗긴 외투를 찾아 유령으로 떠도는 가난한 관리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오래 전 고골리가 소설 ‘외투’ 속에 그려낸 오늘의 러시아인인가? 소비에트연방 해체와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한 지금의 러시아는 매서운 회오리 바람만 훑고 지나가는 눈 덮인 평원, 그 음산한 대륙의 유령일 뿐인가?

8월 첫 주말, 세계는 숨을 죽이고 북태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작전을 지켜봤다. 러시아의 AS-28 프리즈(Priz) 심해잠수정이 수심 190m 깊은 바다에서 스크루가 어망에 걸려 꼼짝 못하고 있었다. 3일 동안이나 그 안에 갇혀 있던 7명의 승조원은 시시각각 닥쳐 오는 죽음의 공포에 몸을 떨며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는 예전과 달리 세계각국에 긴급구조를 요청했다. 미국 일본 영국이 즉시 이에 호응하여 장비와 구조인력을 파견했다. 8월 7일, 가장 먼저 도착한 영국 해군 구조팀이 원격조정 잠수정 스콜피오 45를 이용해 어망을 잘라내자 프리즈는 수면위로 떠올랐다. 세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프리즈에 남아 있던 산소는 겨우 너 댓 시간 분량뿐이었다. 5년 전,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호 사고로 승조원 118명 모두가 사망한 적이 있다. 두 번이나 잠수함 사고로 세계를 놀라게 한 러시아다.

강력한 국방력의 토대 위에 강력한 러시아를 재건하고 한 때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제패하던 그 영광을 되찾겠다던 푸틴 대통령은 전세계 앞에서 다시 한번 체면을 잃었다. 문제는 러시아가 이 정도의 수심에서 잠수함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구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 해군력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사고라고 전 세계 언론은 입을 모았다. 과연 그러한가?

러시아의 실상 보여주는 해군력

러시아가 50여년 동안 미국과 힘겹게 벌이던 냉전이 끝났다. 체제경쟁에서 철저히 패배한 것이다. 이후, 러시아는 함대 대 함대의 대양해전(大洋海戰) 개념을 버리고 연안해전(沿岸海戰)으로 전환했다. 무기체계도 이에 맞추어 변화하고 있다.

군사력 전반이 다 그렇지만 특히 해군력 현황을 살펴보면 러시아가 안고 있는 고민이 눈에 보인다. 과거에 쟁쟁하게 명성을 날리던 숱한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들이 수리를 기다리며 몇년씩 항구나 조선소에 묶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산부족으로 수리를 포기하고 도태시키는 함정들도 속출한다. 심지어는 건조 중인 새 전함들도 건조 자체가 취소되거나 외국에 팔려 나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구한 운명의 항공모함 배리악(Varyag)이다. 1990년대 중반, 필자도 직접 우크라이나 니콜라이에프에 있는 조선소를 방문하여 이 항공모함을 구경한 적이 있다. 언젠가는 그 흥미로운 얘기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해군의 4개 함대 중 태평양함대는 다른 함대에 비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으며 태평양에서의 작전도 활발하다. 남아메리카의 서부연안국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및 중동 국가들, 멀리는 아프리카 동부해안 국가들에 이르는 해상수송로의 보호는 태평양함대의 임무이다. 현실적으로 러시아는 미국에 대응할 수 있는 대양해군과 비대칭전력을 동시에 보유한 유일한 국가이다.

태평양함대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제외하고 사령부가 위치한 블라디보스톡이나 다른 기지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면 라 페루즈해협, 쿠나시루해협 및 쯔가루해협 그리고 대한해협을 통과해야만 한다.

북쪽에 위치한 해협들은 일본이 자국 영토라 주장하는 섬들 사이를 통과한다. 대한해협은 서태평양, 인도양에 이르는 중요한 길목으로 폭이 약 200km에 이르고 한국과 일본 사이를 통과한다. 만일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러시아가 남 쿠릴을 일본에 반환한다면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군사활동과 동부 러시아 경제활동의 모든 관문이 일본 또는 한국에 의해 통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세력재편의 파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냉전 후 러시아에도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력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앞 다투어 약속한 원조 제공이 실제로는 지지부진하고, 소련 해체과정과 1998년 경제위기 때 서방국가 보여줬던 일방주의, 우월주의적 접근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오만한 정책이 깊은 정서적 상처를 남기며 민족주의의 불씨를 되살렸다.

인권의 개선과 민주주의 정치체제로의 이행이 부진하다고 미국은 일방적으로 러시아를 압박한다. 이에 더하여 테러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잣대, 즉 미국을 목표로 한 테러는 응징해야 할 테러이고, 다른 나라에서 발생하는 인종과 정치체제의 분쟁에 따른 테러는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라는 미국의 접근 자세는 폭발적 인화성을 띤 소수민족 문제를 안고 있는 러시아나 중국에게는 심각한 체제 위협 요인이다. 이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공동대응이 7월1일 모스크바에서 발표한 공동선언이다. 국제정치, 군사문제 등 전면적 협력의 선언이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추산에 의하면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러시아는 중국에 약 50억 달러어치의 군사무기를 판매했다. 2002년에는 연간 25억 달러, 2003년~2005년에는 연간 40억 달러어치의 무기가 중국에 공급될 것이다. 그 중에는 킬로급(Kilo Class) 잠수함과 2척의 소브레메니(Sovremennyy)급 구축함도 공급됐다. 이 구축함은 만재톤수 8,480톤, 스팀터빈 2축 9만9,500마력, 최고 속도 32.7노트로 항해할 수 있다. 카모프 헬리콥터(Ka-25/26/27) 1대를 탑재할 수 있고, 초음속 순항미사일 3M-80 (SS-N-22 썬번) 8대를 장착할 수 있다. 러시아 자체도 겨우 9척만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3척이 태평양 함대에 배치돼 있다.

러시아는 한때 6척까지 항공모함을 보유했지만 이제는 1991년도에 건조된 만재톤수 6만7,000톤급 쿠츠네초브(Kuznetsov) 한 척만 남아있다. 최대 52대의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으며 20만 마력의 스팀터빈추진으로 30노트의 속력으로 항해할 수 있다. 스키점프 활주로가 러시아의 항공모함의 특징이다.

18일부터 중국과 합동군사훈련

18일부터 25일까지 ‘평화임무 2005’라 불리는 러시아-중국 합동군사훈련이 중국의 산둥반도 칭다오(靑島)항과 황해, 그리고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된다. 이 훈련은 모스크바 공동선언에서 이미 밝힌 것이다. 양국의 병력 1만여명이 참가하는 이 훈련을 위해 러시아가 파견한 1,800명의 병력이 이미 12일 훈련장소에 도착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영토 또는 인접지역에서 소수 민족의 심각한 무력충돌이 일어나고 유엔과 이웃 국가들에게 정치적 안정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가상 상황이 설정됐다. 두 나라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훈련은 또한 한반도 상황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아시아에 진출한 소련의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중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견제세력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현재처럼, 러시아와 중국이 군사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하며 미국에 대응한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것을 견제할 수 있을까? 미국이 구상하는 미국-일본-한국 삼각 군사동맹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 주변, 특히 동해 깊은 바다 속은 러시아 미국 일본 중국 북한 및 한국의 잠수함들이 분주하게 서로를 견제하며 탐색하는 잠수함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 밑 깊은 골을 따라 은밀하게 펼쳐지는 쫓고 쫓기는 치열한 경쟁은 언젠가는 거대한 물결이 되고 파도가 되어 요동칠 것이다.

윤석철객원 기자 ysc@hk.co.kr

■ 러시아 패군의 중추세력 태평양 함대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긴 3만8,000km나 되는 해안선을 보유한 나라이다. 2개의 대양, 12개의 바다에 접해 있고 전체 국경선의 70%가 바다에 연해 있다. 전체 해안 국경선이 연결되지 않고 끊어져 있어서 해군이 발틱함대 북양함대 흑해함대 태평양함대 등 4개 함대로 편성됐다. 태평양함대 사령부는 블라디보스톡에 있으며 우리나라 주변 해역은 태평양함대 관할이다.

태평양함대는 북양함대와 더불어 러시아 해군력의 중추적 세력이다.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챠트스키, 마가단 그리고 소비예트카야 가반 등을 모항으로 한다.

태평양함대에 배치된 약 660척의 크고 작은 전함의 총 배수톤수는 155만톤에 달한다. 주요 수상함이 55척, 45척의 원자력 잠수함을 포함한 잠수함 세력이 60척이며 최근에 아쿨라급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이 취역한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반 로고브급을 비롯한 강습 상륙전단, 해군보병사단 등은 태평양함대가 가진 상륙전 능력을 상징한다. 원자력 잠수함은 러시아 국방부의 직접 통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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