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연휴동안 강릉은 무척 더웠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이곳은 이렇게 더운데 아들이 있는 곳은 어떠냐고 전화를 하셨다. 나는 다른 집은 모르겠는데, 아들집은 바람이 늘 와서 논다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고추를 따 마당 가득 펼쳐놓았다고 했다. 첫물 다음 두 번째 딴 고추인데, 그것만도 몇 가마니가 넘는다며 “이제 느 아버지 시내 출입 다 하셨다.”고 말한다.
고추는 밭에서 가꾸기도 쉽지 않지만 따 들인 다음 말리기도 여간 손이 가는 일이 아니다. 건조기가 아니라 마당과 지붕에 펼쳐 제대로 말리는 태양초는 그랬다. 구름 지나갈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늘 쳐다봐야 하고, 혹시 빗낱이 떨어질 조짐이라도 보이면 서둘러 자리를 걷어 방으로 모셔야 한다.
그런 정성 속에 마당의 고추는 껍질이 점점 얇아지고 투명해져 가며, 검붉은 색의 태양초로 바뀌어간다. 추석 때 내려가면 어머니가 다섯 자식 모두에게 선물로 일년 먹을 잘 빻은 고춧가루 한 포대씩 내어 주신다.
우리집 며느리들이 어머니 앞에 단체로 눈물을 글썽이는 것도 바로 이때다. 농사를 전혀 모르고 자란 며느리들도 그게 어떤 정성으로 만들어지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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