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검거보다는 잿밥에 더 눈이 먼 강력계 형사 이대로(이범수). 범인과 마주치면 발이 절로 저리면서도, 여덟 살 딸의 피아노를 사기 위해서는 뇌물수수 등의 비리도 서슴지않는 불량형사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뇌종양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는다. 그는 혼자 살아가야 할 어린 딸을 두고 “이대로 죽을 순 없다”고 다짐한다.
억대의 돈을 딸에게 남겨줄 수 있도록 보험에 가입하고는 그때부터 ‘순직’을 하기위해 그야말로 죽어라 뛰어다닌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법.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 앞에선 그악스러운 범인들도 속수무책이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죽으려 애를 쓸수록 죽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웃음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영화 꽤나 본 사람들이라면 거의 비슷한 설정의 미국 영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1990)를 떠올릴 것이다.
비리 경찰을 타박하는 동료들의 코믹한 모습과 “나하고 같은 과”라는 대사를 곱씹다 보면 ‘투캅스’(1993)가 오버랩 될 만도 하다. 그리고 딸에게 남길 이야기를 비디오테이프에 담은 장면은 ‘편지’(1997)를 연상케 한다.
영화는 이렇게 적지 않은 기시감(旣視感)을 던져줄 뿐만 아니라, 꼼수를 모르는 모범생처럼 예측 가능한 웃음들을 유발한다. 이야기 전개는 튀지 않으며 연기자들은 변신보다는 기존 이미지를 최대한으로 재활용한다.
감초 역할을 하는 강형사(손현주)와 차형사(최성국)는 TV드라마나 시트콤을 통해서 익히 보아온 말더듬이와 떠벌이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다.
한국 코미디 영화의 공식을 깨뜨릴 수 없다는 듯 후반부에서는 훈훈한 가족 영화로 돌변하기까지 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규정 속도와 교통신호를 지키는 운전사처럼 답답해보인다.
말초적인 억지 웃음을 강요하지 않고 감동을 함께 주려는 감독의 시도는 착하고 건강해보이지만, 철 지난 유행가를 듣는 듯한 기분과 작위성을 떨치기 힘들다.
무리수를 두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려는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은 미덕이다. 조미료 맛이 강한 코미디에 지쳐 다소 소박한 웃음을 찾는 관객들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영화다. 웃음과 눈물을 오가며 열연을 펼치는 이범수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영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18일 개봉. 12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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