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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과거는 너른 山의 품에 묻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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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과거는 너른 山의 품에 묻을래요"

입력
2005.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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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서 잠깐 쉬자.”

17일 정오 강원 설악산 양폭대피소(해발 800여m).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학생들은 무거운 배낭을 벗어 던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 몸을 땅에 뉘였다. 폭염에 온 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심호흡 몇 번에 숨을 고르고 나니 설악산 능선이 시원스레 눈에 들어온다. “와, 저 까마득한 길을 내가 걸어왔다니….” 정상은 한참 멀었건만 학생들은 벌써 스스로 대견하다는 표정이다.

가출과 비행을 거듭하며 방황하던 10대 소녀들은 이날 지난 시절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기 위해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의 쉼터인 경남 ‘창원 여성의 집’ 부설 범숙학교 중ㆍ고교 과정 20여 명은 교사, 자원봉사자 10여 명과 함께 오전 8시 남설악매표소를 출발해 태백산~월악산~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15박 16일간의 장정을 시작했다. 이 행사에는 ‘아름다운 도전, 걸어가자 친구들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참가자들은 부모의 이혼,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나가거나 성매매에 노출된 후 이 학교에 들어온 14~19세의 소녀들. 이 학교를 졸업한 10여 명은 자원봉사자로 함께 했다.

지도교사 김창영(31)씨는 “아이들이 힘든 발걸음 속에서 자신을 되찾고 미래에 대한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시작했다”며 “어린 여성의 몸으로 결코 쉽지 않은 일정이지만 다들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가슴도 활짝 열려 있었다. “공부든 학교 생활이든 힘들거나 귀찮으면 쉽게 포기하곤 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꼭 나 자신을 이겨보고 싶습니다.”(김한영ㆍ17세) “한 달 전부터 등산과 달리기로 체력을 단련하면서 친구들과 더욱 친해졌어요. 벌써부터 뭔가 성취한 것 같아요. 서로 격려해가며 힘들게 얻은 것이라 나중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김진임ㆍ17)

이들은 3일 후 지리산 연수원에서 사이코 드라마, 미술ㆍ음악 수업 등을 통해 아픈 과거를 극복하는 정서 치유 시간도 갖는다. 또 종주를 마치면 지난 10여 년간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수필집도 낼 계획이다.

창원 여성의 집 조현순(53) 관장은 “이 프로그램이 아픔을 딛고 건강한 삶을 준비해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전국 40만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를 늘리고 관련 프로그램도 많이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범숙학교는 숙식과 학업을 같이 하는 중ㆍ고교 과정 대안학교로 2001년 ‘창원 여성의 집’ 내에 문을 열었다. 이곳을 거쳐간 4명이 대학에 진학했고 국토 순례나 래프팅 투어 같은 ‘아름다운 도전’ 프로그램을 매년 계속하고 있다.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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