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애인… 아빠에겐 보스... 이 남자, 연애하고 싶다. 아빠만 아니라면...’이라는 영화의 카피는 언뜻 이 영화를 연애이야기만 풀어 놓는 로맨틱 코미디처럼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 굿 컴퍼니’(In Good Company)는 관객들에게 얼얼한 펀치를 날리는, 꽤나 진지한 영화다.
댄(데니스 퀘이드)은 스포츠 잡지의 광고 담당 이사로 평생 회사에 몸바쳐왔다. 어느날 회사가 인수합병 되면서 26세 새파랗게 젊은 카터(토퍼 그레이스)가 상사로 부임한다.
애지중지 키운 큰 딸 알렉스(스칼렛 요한슨)는 타지의 사립대학으로 편입하겠다고 하고 댄은 딸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늘린다. 그의 어깨를 누르는 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아내는 늦둥이를 임신하고 알렉스는 사랑에 빠지는데 그 대상이 바로 카터다.
댄과 알렉스의 부녀관계, 댄과 카터가 만들어가는 유사 부자관계, 알렉스와 카터의 사랑 등 3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되면서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이 시대의 50대 가장이라면 영화를 당의정처럼 둘러싸고 있는 그 유쾌함 때문에 도리어 가슴이 쓰릴 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숨기는 게 없기로 약속 했잖아.” “아빠 그건 다섯 살 때 일이에요.” “너는 다섯 살 때가 더 좋았어.” 대화는 늘 그 자리에 있으려는 아버지와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딸의 관계를 보여준다.
회사에서 댄은 자신이 30년 가까이 넘게 지켜온, 광고주와의 인간적 관계를 중시하는 영업방식을 고수하려 하지만 애송이 카터는 논리적 설득을 중시한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댄의 방식은 고리타분하게 취급 받을 뿐이다.
정리해고 됐다는 소식에 “네, 결정 내린 당신도 힘들었을 거에요”라며 수긍하는 사람, “저는 여기서 5년이나 일했어요”라며 서러워 마냥 우는 사람, “왜 하필 나냐”고 화내는 사람 등, 우리 역시 영화 속 등장인물처럼 그 상황에서 취할 태도는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위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아버지로서 상사로서 자리를 지켜내는 댄의 모습은 오히려 범인들과 달라 판타지다.
영화는 담백하다. 결국 회사는 정상화되고 댄은 실업자가 된 카터에게 “이제 내 밑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한다. 너무도 미국적이지 않은 인간적인 결말이다.
더욱이 고개 숙인 우리네 아빠들의 눈물겨운 이야기와 비교해보면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경쾌하다. 하지만 그 점이 더 가슴을 싸하게 만든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저당 잡히면서도, 웃어야 하는 게 요즘 아빠들이므로. 어쨌든 그나마 낙천성이 어려움을 극복케 하는 힘이라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웃게 된다. ‘아메리칸 파이’ ‘어바웃 어 보이’의 폴 웨이츠 감독. 26일 개봉. 15세.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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