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안기부와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사실 공개 이후 국정원 개혁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1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개혁 긴급토론회’에서 여야는 “현재의 국정원 체제로는 안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선 방향이 달랐다.
■ 기획·조정업무 이관
정보의 수집과 기획ㆍ조정업무를 분리하자는 주장이다. 세계적으로 국정원처럼 두 가지 업무를 모두 담당하는 기관이 드물다는 점을 고려한 방안이다. 경원대 이승우 교수는 “국정원에 정보 수집은 물론 기획ㆍ조정권까지 부여돼 권한 남용의 여지가 생긴 것”이라며 “이들 기능을 서로 다른 국가기관에 분리해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대통령 직속의 ‘국가정보위’(가칭) 설치를 제안했다. 각급 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국가의 정보정책과 중장기 우선순위 등을 판단하는 주체를 국정원이라는 개별 기관이 아니라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 맡기자는 얘기다.
이와 함께 국내파트의 기능과 조직을 축소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최재천 의원은 “경제ㆍ통신ㆍ마약 등을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하되 인사파일 관리나 언론정보 수집 등은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상열 의원과 이승우 교수는 국정원 수사권의 제한ㆍ폐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국내ㆍ해외파트 분리론에 대해선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
■ 국회 통제 강화
국회의 예ㆍ결산 심사권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정보기관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부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예비비가 많은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지만 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이상열 의원)는 지적과 함께 “국회 정보위 내에 예ㆍ결산소위를 구성해 실질심사를 강화하자”(최재천 의원)는 의견을 냈다.
■ 국정원 해체론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불법도청 사실을 인정한 것을 계기로 국정원은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며 국정원 해체를 주장했다.
그는 “국정원 임직원의 뼛속까지 침투해있는 정치사찰과 도청, 미행, 협박의 문화는 국정원 해체를 통해서만 극복 가능하다”며 “국정원의 폐습으로부터 자유롭고 해외 사정에 밝은 신선한 이들을 중심으로 해외정보기관을 새롭게 꾸리자”고 제안했다.
■ 정보기관 확대ㆍ개편론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은 “정보화 시대에 맞게 정보기관이 국내외 정보 뿐 아니라 산업정보 등을 총괄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확대ㆍ개편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 의원은 ‘국정원의 발전적 해체’라는 표현을 썼지만 “불법도청 사실 때문에 과거청산의 차원에서 감성적ㆍ이상주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국정원의 해체나 기능약화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토론자로 참석한 정영철 전 국정원 해외담당 국장은 “DJ나 YS정부는 국정원의 국내정치 효용성을 버리겠다는 의지가 박약했다”며 “국정원 개편은 도청 문제와는 별도로 다뤄져야 하며 시스템과 의식구조 개혁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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