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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띠오빼빼 1인극 '왕비, 100년만에 외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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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띠오빼빼 1인극 '왕비, 100년만에 외출하다'

입력
2005.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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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돌에 광화문에서는 성대한 기념식이 펼쳐졌고, 대학로에서는 ‘왕비, 100년만에 외출하다’가 공연됐다. 본디 월요일은 연극계의 휴일. 그러나 극단 띠오빼빼는 마침 광복절과 맞물린 월요일에 공연을 펼쳐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고, 객석은 만원으로 화답했다.

연극은 죽어서야 황후로 격상되는 민비의 생전 이야기다. 가문만 있되 권세도 부도 없는 양반집 무남독녀로 태어난 민자영. 그녀가 110년 만에 관에서 나와 자신의 넋두리를 펼친다.

이를테면 대체 역사 드라마인 셈이다. 뮤지컬 ‘명성황후’가 그녀의 파란 많은 삶을 현란한 볼거리, 들을거리로 재현했다면, 이 모노드라마는 차분한 논리와 설득력으로 민비를 살려낸다.

무대의 시선은 여인으로서의 민비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잊혀진 여인처럼 궁궐 깊숙한 방에서 남편 얼굴을 구경도 못 한 채 세월을 보낸 지 2년, 고종의 첫사랑인 궁인 이씨가 아들을 출산한 뒤 그녀를 사로잡는 좌절감과 질투를 그릴 때는 ‘왕비열전’이 따로 없다. 그러나 무대는 그 이상이다.

원작자 박영, 연출자 이승옥, 출연 배우 박정재, 분장 손진숙 등 극의 뼈대를 만드는 네 사람이 모두 여성이란 점도 작품 속에 면면히 흐르는 페미니즘을 암시한다. 연출자는 “애초 황후 보다는 여자, 즉 민자영의 근본적ㆍ내면적 세계에 초점을 맞춰줄 것을 작가에게 주문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출산율 세계 최하위권의 한국에 명성황후가 하는 말은 이 시대 여성들에게 어느 정도 먹힐까? “예나 지금이나 왕실, 사가 할 것 없이 여자가 자식을 낳는 것은 곧 힘을 갖는 일입니다. 아들이건 딸이건 많이 낳으세요. 자식은 재산이고 담보이고 희망이고 미래이니까요.” 명성황후 버전 페미니즘의 속내를 더 따라가 보자.

“내가 여자의 몸으로 남편과 아들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정치에 몸담았을까요? 국가를 지키고 만백성을 지키는 것은 곧 왕과 왕자를 지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이 연극은 권력의 핵심에 올랐으나 “살아 남고, 지키기 급급했던 가련하고 슬픈 여인”에 대한 후세의 독특한 해석인 셈이다.

서민의 옷에서 중전의 성장까지를, 짧은 암전 틈틈이 소화해 내는 배우 박정재(44)의 민활함이 돋보인다. 임의의 관객을 붙들고 하소연하는 등 민비를 이 시대에 되살려 내는 방식이 대단히 직설적이다. 공교롭게도 민비가 세상을 뜰 때의 나이기도 하다다.

9월11일까지 상상아트홀 화이트관 화~금 오후 6시, 일 5시. 시해사건일인 10월7일부터는 블루관으로 옮겨 11월6일까지 공연한다. (02)765-4565.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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