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남과 북에서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다. 한 갑자가 꺾이는 해라 규모는 짐작되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8ㆍ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는 북한 축구선수단과 북측 당국ㆍ민간 대표단을 태우고 온 고려항공은 이제 눈에 익다. 북측 대표단은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했고 남북통일축구경기가 열렸다.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린 15일 최초의 이산가족 화상상봉이 이뤄졌고 북한 선박 두 척이 분단 후 처음으로 제주해협을 통과했다. 군사분계선 상의 모든 선전시설물의 철거도 완료됐다. 북측대표단의 국회와 청와대 방문계획도 잡혀있다. 태극기 물결 뒤에 도도한 질풍노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 북측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는 남한 주민들에겐 충격이었다. 6ㆍ26전쟁 이후 총칼을 겨눈 채 대치해온 북한이 남한의 전쟁희생자를 안장한 묘역을 참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북측은 상상할 수 없는 제안을 했고 정부는 고민 끝에 이를 수용했다. 일부 의전이 생략된 5~6초간의 묵념이 전부였지만 이 짧은 순간은 전기적(轉機的) 의미를 지니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혼란과 당황을 겪는 쪽은 남측인 것 같다. 앞으로 우리 대표단의 북한 현충시설 방문 여부가 고민거리다. 어떤 면에선 과거의 벽을 허무는데 남한이 북한보다 장애가 더 많음을 깨닫는다.
■ 남북통일축구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이 북한에 이긴 데 대한 남한 주민들의 심사도 예전 같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북대결에서만은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사라졌다.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본프레레 감독은 국가대항전 성격의 남북한 대결에서 승리가 필요했겠지만, 남한 주민들은 3대0이란 스코어가 좀 지나쳤다고 여겼다.
아무리 ‘스포츠는 스포츠’라 해도 광복 60주년 잔치에 초청한 손님에게 할 대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반도기가 물결치고 ‘조국통일’의 응원구호가 울려 퍼진 경기장의 분위기는 분명 그랬다.
■ 우리 모두가 질풍노도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북측이 먼저 벽을 허물고 모든 것을 초월하자고 한다. 미래의 변화를 예고하는 거대한 물결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8ㆍ15 경축사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내부에 크고 작은 파문이 겹쳐 있는 터다. 작은 파문에 휩쓸리다가 더 큰 물결에 대비하지 못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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