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천연기념물 제329호) 한 마리가 농민이 설치한 덫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됐다. 이 반달가슴곰은 남북 야생동물 교류로 북한에서 들여온 것으로 지난달 1일 방사돼 그동안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부착한 전파발신기의 추적ㆍ관리를 받아왔다.
전남 구례경찰서는 16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목통골 야산에서 밤나무농장 주인 양모(58)씨가 농장에 쳐놓은 올무에 목이 걸려 죽은 생후 1년6개월짜리 암컷 반달가슴곰 ‘랑림32’의 사체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양씨는 경찰에서 “평소 멧돼지로 인한 피해가 극심해 지난해 가을 농장 주변에 철망과 올무를 설치했다”며 “7일 오후 5시20분께 엉뚱하게도 반달곰이 올무에 걸려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처벌이 두려워 농장에서 500여㎙ 떨어진 곳으로 곰을 옮겨 땅에 묻고 나뭇가지로 덮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경찰은 일단 양씨를 야생동식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고의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랑림32의 사체에서 가검물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웅담성분 검출조사 등을 의뢰했다. 북한 랑림산맥이 고향이어서 ‘랑림’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랑림32는 4월 14일 북한 평양중앙동물원에서 암ㆍ수 반달가슴곰 8마리를 반입할 때 함께 와 71일간 자연적응훈련을 거쳤고, 지난달 1일 귀에 전파발신기를 부착한 채 지리산 남쪽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에서 방사됐다.
랑림32는 이후 동료 반달곰 7마리와 헤어져 지리산 남동쪽 질매재에서 혼자 서식하며 활동하다 뱀사골과 화개재 등을 거쳐 20일 하동군 화개면으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지도 참조). 나머지 반달가슴곰 7마리는 모두 처음 방사됐던 문수리 일대를 떠나지 않고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만의 활동영역을 넓혀가던 랑림32가 국립공원관리공단 모니터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8일. 전파발신기에서 7일부터 신호음이 약해지더니 결국 위치 변화가 없는 비활동성 모드가 감지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반달가슴곰 모니터링팀은 랑림32가 죽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발신기 고장 가능성이 있는데다, 지리산에 쏟아진 국지성 폭우로 랑림32가 잠시 활동을 멈춘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10일부터 비가 그쳤는데도 계속 활동이 정지된 것으로 나타나자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경찰과 함께 위치추적에 나서 14일 랑림32가 매장된 장소를 찾아냈다.
경찰은 “랑림32가 지리산국립공원 구역을 1㎞나 벗어난 화개면 범왕리 일대 밤나무 과수원 밀집지역을 활동무대로 구축하던 중 양씨의 농장에 설치된 벌통을 노리고 접근하다 덫에 걸렸을 것”이라 추정했다. 법왕리와 인근 삼신리, 운수리 지역의 밤나무 과수원 면적은 470㏊에 달하며 상당수 농가들이 과수원 내에 꿀벌을 키우고 있다.
이로써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위해 방사된 곰의 수는 북한산 7마리와 러시아 연해주산 5마리 등 12마리로 줄었다.
구례=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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